필수 신고국 美·日·EU 남아
합병 승인 위해 ‘슬롯 반납’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슬롯 반납, 항공 주권 포기”

ⓒ천지일보 2023.03.16.
ⓒ천지일보 2023.03.16.

◆‘美·日·EU’ 기업결합 승인 남아

국내 항공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주요 14개국 승인을 얻어야만 이뤄질 수 있는데, 현재 11개국 승인을 받은 상태다. 핵심 시장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3개국이 남았지만 각국 경쟁당국이 반독점 심사를 강화하는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합병 조건으로 잇단 슬롯 반납

각국의 경쟁당국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으로 일부 슬롯의 반납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해외 경쟁당국의 사례를 볼 때 남은 미국, EU, 일본 등 3개국도 독점을 막기 위해 슬롯 반납 등의 조건을 내걸 공산이 크다. 이에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 시계가 더디게 가고 있다. 지난 2020년 11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한 지 3년째다.

조원태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 항공업계 전체가 위축되고 우리의 활동 입지 또한 타격을 받는다”면서 “2023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큰 과제를 완수하는 해가 될 것이다. 모든 임직원들이 흔들림없이 소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올해는 반드시 경쟁 당국으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겠다는 조원태 회장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을 위해 2021년 1월 14일 이후 총 14개 경쟁당국에 기업 결합을 신고했다. 국제선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과 운항권 반납 등 제한된 조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았으나 EU(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 경쟁당국의 승인을 남겨 두고 있다. 이들 중 한 곳이라도 승인을 거절하면 인수합병은 물건너간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제공: 한진그룹) ⓒ천지일보DB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제공: 한진그룹) ⓒ천지일보DB

◆합병 일정 지연에 속 타는 대한항공

대한항공은 지난 1일(현지시간) 임의신고국인 영국의 경쟁당국(CMA, 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기업결합 승인을 획득했다. 우리 공정위와 중국, 호주를 포함한 11국에선 이미 승인받은 대한항공은 미국, EU, 일본 경쟁당국의 승인만 남겨놓게 됐다. 영국 경쟁당국은 지난해 11월 28일 대한항공이 제출한 자진 시정안을 원칙적으로 수용했다고 밝히고, 자진 시정안에 대한 시장의 의견을 청취해왔다.

이후 1월 26일 시정조치안 승인 결정을 앞두고 추가 검토를 위해 3월 23일까지 심사기한을 연장했지만, 이보다 빠르게 기업결합 승인 결정을 내렸다. 이번 영국 경쟁당국의 승인 결정은 대한항공이 제출한 시정조치가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라는 게 대한항공 측의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승인으로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을 위한 최종 관문에 성큼 다가섰다”고 자평했다.

미국과 EU, 일본 경쟁당국의 승인이 남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단계이다. 남은 필수국 중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심사 기간을 연장했고, 일본은 여전히 사전 협의 절차 단계다. 특히 미국은 최근 자국 내 항공사 간 인수합병을 불허하며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1위 저비용항공사(LCC)인 제트블루의 미국 스피리트항공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제트블루와 스피리트는 미국 1·2위 LCC로 합병시 점유율이 매우 커지는 상황이었다. EU는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기업결합을 반대한 사례가 많아 남은 국가 중 가장 난관으로 점쳐지는 곳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019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으나 EU가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기업결합을 반대했고, 거래는 최종 결렬된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9일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2단계 심사기한을 7월 5일에서 8월 3일로 미룬다고 공지했다. 양사 합병으로 발생하는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항공이 제출한 시정조치안을 꼼꼼하게 살펴본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U의 추가 심사 기한이 8월을 넘어서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올해 상반기 내 마무리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합병 일정이 자꾸만 지연되는 데다 보다 까다로운 심사가 예상되면서 대한항공도 속이 타는 상황이다.

◆美·EU도 슬롯 배분 요청 가능성 커

게다가 각국의 경쟁당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조건으로 슬롯 반납을 요구하고 있어 경쟁력 약화도 우려되고 있다.

CMA는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대한항공이 가진 인천~런던 노선 슬롯 중 최대 주 7개를 영국 LCC인 버진애틀랜틱에 양보하는 조건으로 승인했다. 필수 신고 국가 중 처음으로 합병을 승인한 중국 경쟁당국도 지난해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복되는 슬롯 9개를 내놓겠다고 하자 양사의 결합을 찬성했다.

당초 한국 공정위는 5개 노선이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국 경쟁당국은 해당 5개 노선에 4개 노선을 추가해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9개 노선에 대한 슬롯을 일부 반납하기로 한 뒤 중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공정위도 지난해 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일로부터 10년간 171개 노선 중 26개에 대해 운수권이나 슬롯 반납을 의무화하는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남은 미국과 EU의 심사에서도 슬롯 배분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EU의 경우 주요 노선 상당수가 양사 점유율이 50%를 넘기 때문에 운수권 및 슬롯 이전이 추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항공산업은 기간산업이므로 국내 항공사가 최대한 많은 슬롯을 확보하는 게 국가 경쟁력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합병 승인을 얻는 대가로 양사의 중복 노선 운수권과 슬롯 일부를 외항사로 넘기게 되면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항공이 슬롯을 반납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 효과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시아나항공 노조와 참여연대 등이 2021년 1월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불승인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아시아나항공 노조와 참여연대 등이 2021년 1월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불승인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운수권·슬롯, 항공사의 중요한 자산”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항공 주권 포기하는 기업결합 문제 있다”며 “산업은행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진행될 때마다 대한항공이 운수권과 슬롯을 반납하는 것은 항공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이런 추세라면 EU에서 2단계 심층조사로 진행하는 만큼 추가로 요청하는 운수권 및 슬롯이 예상된다”며 “미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국의 경쟁당국은 이번 기업결합을 기회로 우리의 알짜노선과 슬롯을 요구하며 자국의 항공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며 “항공 운수권과 슬롯은 항공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동시에 국가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공정위가 2022년 2월까지 심사를 진행하면서 독과점의 우려가 높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승인이 아닌 조건부 승인이라는 패착을 둬 국가의 항공산업을 외국 경쟁당국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최근 논란이 됐던 마일리지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기업 독과점의 피해는 단적으로 최근 마일리지 개편 사태에서도 알 수 있다”며 “국토부의 개입으로 수면 밑으로 내려갔지만 독점 이후 국토부가 모든 사안에 대해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에 피해는 모두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결국 2개의 대형 항공사와 3개의 LCC를 가지게 되는 재벌은 항공산업의 독과점을 더욱 공고히 해 철옹성을 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항공 주권 포기하는 기업결합 문제 있다”며 “산업은행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진행될 때마다 대한항공이 운수권과 슬롯을 반납하는 것은 항공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이런 추세라면 EU에서 2단계 심층조사로 진행하는 만큼 추가로 요청하는 운수권 및 슬롯이 예상된다”며 “미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국의 경쟁당국은 이번 기업결합을 기회로 우리의 알짜노선과 슬롯을 요구하며 자국의 항공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며 “항공 운수권과 슬롯은 항공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동시에 국가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공정위가 2022년 2월까지 심사를 진행하면서 독과점의 우려가 높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승인이 아닌 조건부 승인이라는 패착을 둬 국가의 항공산업을 외국 경쟁당국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최근 논란이 됐던 마일리지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기업 독과점의 피해는 단적으로 최근 마일리지 개편 사태에서도 알 수 있다”며 “국토부의 개입으로 수면 밑으로 내려갔지만 독점 이후 국토부가 모든 사안에 대해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에 피해는 모두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결국 2개의 대형 항공사와 3개의 LCC를 가지게 되는 재벌은 항공산업의 독과점을 더욱 공고히 해 철옹성을 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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