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644(인조 22)년 베이징(北京)에는 독일인 출신 예수회 사제 아담 샬 신부가 남천주당(南天主堂)에 머물면서 포교활동(布敎活動)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이징(北京)의 관소(館所)인 문연각(文淵閣)에 머물고 있던 소현세자는 남천주당에 있던 아담 샬 신부(神父)를 만나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만남이 소현세자가 서구문물(西歐文物)을 비롯해 천주교(天主敎)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됐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기간으로 볼 때 소현세자와 아담 샬 신부와의 만남은 불과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실로 소현세자에게 준 신선한 충격은 결코 적지 않았다고 본다.

소현세자의 천주교에 대한 생각은 주로 아담 샬 신부와 교환한 서신(書信)을 통해 알 수 있는데 특히 소현세자가 아담 샬 신부한테 선물로 받은 성화(聖畵)를 보면서 마음이 깨끗해짐을 느꼈다는 대목에 이르러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조선천주교회(朝鮮天主敎會)의 선구자(先驅者)는 광암(曠菴) 이벽(李蘗)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그 이전에 소현세자도 천주교에 대해 깊은 흥미를 느꼈다는 점을 새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소현세자는 아담 샬 신부와의 여러 차례에 걸친 교류를 통해 서구문물을 비롯한 천주교 교리(敎理)에 대해 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여기에 성직자(聖職者) 파견에 대한 부분이 포함됐던 것이다.

필자(筆者)가 소현세자와 천주교의 연관성(聯關性)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소현세자가 귀국하면서 뜻밖에 천주교 신자 출신인 5명의 환관(宦官)과 함께 궁녀(宮女)들을 동행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귀국(歸國)할 무렵을 전후해 아담 샬 신부로부터 서구과학 문물을 비롯해 천주교 관련 서적(書籍)과 성물(聖物)들을 선물로 받았지만 이런 부분과 별도로 신자들을 동행했다는 것은 예사롭게 볼 문제가 아니었으나 이러한 경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이러한 실체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발견됐는데 그것은 바로 소현세자가 아담 샬 신부에게 귀국할 때 성직자와 함께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이 성직자 부족이라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으며, 그 대안(代案)으로 교리 교사(敎理敎師)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자를 요청해 이루어진 것이 바로 환관과 궁녀들의 귀국이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소현세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요청을 한 지 정확히 150년의 세월이 흘러서 조선에 주문모(周文謨) 신부(神父)가 최초로 입국(入國)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