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조선왕조(朝鮮王朝) 역대 국왕들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 영조(英祖)였는데 52년동안 재위(在位)하였으며, 향년(享年) 83세를 일기(一期)로 승하(昇遐)했다. 인열왕후(仁烈王后)가 42세라는 젊은 연령(年齡)에 승하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정조(正祖)가 동궁(東宮) 시절 여러차례에 걸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영조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결국 왕위를 계승하였듯이 인열왕후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강빈(姜嬪)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인열왕후가 승하한 이듬해에 불행한 전쟁이 발생하였으니 이를 병자호란(丙子胡亂)이라 한다. 이와 관련해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인조(仁祖)가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했으며, 소현세자와 강빈이 청나라에서 8년 동안 볼모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만명의 백성들이 끌려갔다. 

그렇다면 이러한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인 배경과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거슬러 올라가서 광해군(光海君)이 서인 세력에 의하여 1623(인조 1)년 폐위(廢位)된 이후 불과 4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丁卯胡亂)이다. 

정묘호란 당시 청나라는 후금이라는 연호(年號)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본래 후금은 건주여진족(建州女眞族)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누르하치가 1616(광해 8)년 이러한 여진족을 통일하면서 세운 나라가 후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후금이 1627(인조 5)년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여 당시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고 소현세자는 전주로 피신하는 등 조선에 위기 상황이 조성되었으나 결국 강화도에서 협상을 하여 후금과 조선이 형제국을 맺는 협약을 맺는 선에서 더 이상의 큰 피해 없이 전쟁이 종식되었다. 

그런데 정묘호란이 일어난 지 9년 후가 되는 1636(인조 14)년에 누르하치의 8남이 되는 홍타이지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면서 국호 자체를 기존의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는 등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게 된다.

구체적으로 청태종(淸太宗)은 칭제건원을 명분으로 조선에 청나라의 권위(權威)를 인정하고 기존의 형제관계(兄弟關係)에서 군신관계(君臣關係)로 격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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