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왜 당 대표가 되지 못했을까.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후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안철수 의원이 다음에 당 대표를 할 줄 알았다. 후보 단일화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인수위원장까지 했으니 대통령과 잘 협력해서 당을 이끌 적임자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나 이 같은 초기 분위기는 시간이 가면서 점점 바뀌어 갔다. 오히려 나중에는 경계의 대상이 돼 갔다.

안철수 의원은 서운할 수밖에 없다. 지지율도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 의원은 개의치 않았다. 안 의원은 마라톤으로 다져진 정신력답게 당원들을 꾸준히 만나나갔다. 전국의 지역 당협 행사를 사람이 많이 모이든 적게 모이든 부지런히 찾아 갔다. 다른 후보들이, 심지어 김기현 후보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바닥을 훑는 안 의원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 진심이 통했던지 지지율은 연말연초 확연히 올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 의원이 당 대표가 되지 못한 데는 무언가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 의원이 간과한 것이 무얼까.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비토를 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김기현 후보가 안 의원을 과거 정치 이력을 가져와 마타도어를 할 거라고,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거라고 생각을 못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대통령실과의 합작품이었다. 여기에 언론도 가세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당원들이라면 더더욱 더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이 되는 조선일보의 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윤 대통령은 안 후보가 국민의힘 정체성에 맞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주변에 의구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안 후보는 과거 사드 배치를 반대했고, 간첩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고 신영복씨를 ‘위대한 지식인’으로 평가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안 후보가 과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지, 근본적으로 같이하기 어려운 사람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 안 후보가 ‘중도 확장’을 내세우는 데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과거 “어느 한 정당의 실패를 촉발하고 그로 인한 정치적 수혜를 본 것을 중도 확장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2월 6일자).

과연 이것을 대통령의 말로 봐야 하나,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로 봐야 하나. 대통령실 관계자 발로 언론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던 말들은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계속 됐다.

“함께 정권을 교체하고, 함께 정권을 인수하고, 함께 정권을 준비하며, 함께 정부를 구성해, 정권교체의 힘으로 정치교체, 시대교체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공동선언문에 나오는 문구이다. 함께, 함께, 함께가 이어진다. 이 외에도 선언문에는 ‘함께’라는 말이 총 12번 등장한다.

대선 막바지 단일화를 이룬 과정에 대한 후일담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판, 여차 하면 어찌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감도 감도는 가운데, 윤석열 후보에게 ‘12척의 배’는 안철수 후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날 새벽 시간에 마주 앉아서 맥주캔까지 까면서… 안 후보가 “각서고 뭐고 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뢰가 중요합니다”라고 말하자 윤 후보가 “종이 쪼가리가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나를 믿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한다.

윤 후보는 ‘본인도 밖에서 와서 어렵게 착종하는데, 제가 되면 안 후보, 안에서 잘 안착하게 모든 걸 다해 돕겠다’ 했다 한다. 이 얘기가 안 후보에게는 더더욱 진심 어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안 의원은 2012년 문재인 후보에게 후보를 양보했지만 추후 정치 과정에서 그 세력들로부터 배척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안 의원은 결국 이번에도 같은 맛을 보고 말았다. 안 의원은 한 번 겪고도 바보같이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또 배반당할 걸 알면서도 믿었던 걸까.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아픔이나 고통에 직면한다. 그리고 삭이고 감내하면서 살아간다. 흔히 가장 깊고 오래 가는 아픔은 무엇일까. 그 중에 배신의 감정이란 것도 있지 않을까. 세상이 참 정직하지 못하거나 비정하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스스로를 움켜쥐며 되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알렉산데르 푸슈킨의 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안철수’에게, 과연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