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민주당 이미지’를 씌우는 데 주력했다. ‘우리랑 달라서’ 정통 보수 정당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식이었다.

김기현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과거 정치 이력을 끄집어냈다. 안철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 통칭해 ‘민주당’에 있었을 때의 말과 행동들을 가져와 ‘민주당 DNA’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정확하게 보면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에 몸담았던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던 때 약 1년여의 기간뿐이었다.

무소속으로 있던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에 잠시 몸담았던 것이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제3정당인 국민의당을 만들어 38석을 획득했다. 이른바 3김 이후 최대 정당을 만든 유일한 인물이 된 것이다.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이 됐다. 바른미래당은 결국 분당이 됐다. 외국에서 연수를 하고 돌아온 안철수 후보는 다시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21대 총선을 치렀다. 약 10년에 걸친 격동의 정치 과정은 안철수 후보로서는 큰 자산이었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단일화를 하자고 간청을 해, 단일화를 해줬는데 단일화 이전의 과거를 갖고 얘기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제와 과거를 문제 삼으며 심지어 ‘민주당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던 것이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당 대표는 안철수 후보가 아니라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각인시키고자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말로 계속 전해졌다. 언론은 대통령실 관계자 발로 계속 기사를 썼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의원들도 차례로 나섰다.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아니라는 게 요지였다.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아닌데 왜 뽑으려 하느냐, 알고 뽑으려는 거냐는 식이다. 심지어 김기현 후보 후원회장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대통령이 탈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렇게 김기현 후보의 안철수 후보는 ‘우리랑 다르다’는 마타도어와,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이 원하는 당 대표가 아니다’라는 대통령실의 강력한 배제를 통해 안철수 후보의 기세는 꺾였다.

안 후보는 김기현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는 월등히 앞섰다. 유승민 전 대표가 불출마를 결심한 후에는 다자 대결에서도 1위에 올랐다. 천하람 후보가 나와 유승민 전 대표 지지층을 흡수해도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배제와 김기현 후보의 마타도어 난타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후 지지율은 주춤했고 처음에는 그래도 버티는 듯 했으나, 점점 내려갔다.

그 후 선거는 정책 경쟁이 되지 못했다. 김기현 후보는 안철수 후보를 보수와 맞지 않다는 식으로 다양한 소재를 가져와 계속 공격했고, 황교안 후보는 김기현 후보의 울산 땅 의혹을 집중 제기했고, 천하람 후보는 ‘윤핵관’ 공격 프레임을 집중적으로 활용했다. 그 와중에 안철수 후보는 주말마다 주요 정책을 묶어서 정책 발표를 했다. 다른 어느 후보도 정책 발표를 하는 이벤트는 없었다.

그런데 정치평론가들은 김기현 후보는 무엇을 하고 있고 황교안 후보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천하람 후보는 또 무엇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안 후보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안 후보가 정책 발표를 한 것은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싸움을 하며 무언가를 하는 것들만 뭔가를 한다고 얘기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뭔가를 한다고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윤석열 대통령 비판과 ‘윤핵관 공격 프레임’으로 기세를 올린 천하람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따돌릴 것이라는 평론이 이어졌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1주년의 의미를 부각하는 기념 기자회견을 하는 날, 이준석 전 대표는 이문열 작가의 명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들고 나와 ‘엄석대’를 윤석열 대통령에 비유했다. 워낙 자극적이었기에 언론은 여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다음날부터 투표에 들어갔다. 첫째 날 무려 35.21%의 투표율을 보이며 큰 기대를 모았다. 이전 전당대회가 첫날 25.83%였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4일간 이루어진 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55.10%로 83만 7236명 중 46만 1313명이 투표했다. 역대 최고 투표율이었다.

후보들마다 흥분했다. 김기현 후보는 자신을 1차에서 과반으로 통과시키려는 ‘적극 투표’라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그동안의 불공정과 비상식에 대한, 침묵하는 당원들의 ‘분노 투표’라고 했다. 천하람 후보는 자신의 바람을 의미하는 ‘태풍 투표’라고 했다. 황교안 후보도 대반전을 이룰 ‘반전 투표’라고 했다.

초미의 관심은 김기현 후보가 1차에서 과반을 얻느냐였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2위를 고수하느냐였다. 안철수 후보는 2차 결선에 가서 김기현 후보와의 양자 토론을 보고 결정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김기현 후보를 1차에서 과반으로 통과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후보가 1차에서 당선됨에 따라 안철수 후보는 2위를 했지만 결선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득표 결과를 보면 김기현 후보에게 표가 결집하는 상황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안철수 후보는 김기현 후보와 자신의 양자 결선의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천하람 후보 쪽은 자신이 2위로 올라갈 거라는 여론전에 주력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천하람 후보가 결선에 올라가는 것을 100% 확신한다고 했다. 투표 전날 기자회견을 개최해 윤석열 대통령을 ‘엄석대’에 비유하며 자극했다. 천하람 후보에게는 표가 결집했지만, 안철수 후보에게 올 표, 황교안 후보에게 올 표는 김기현 후보 쪽으로 결집한 셈이 됐다.

결국 김기현 후보는 과반을 넘겼고, 결선을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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