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편안 40일 입법 예고
관리단위 1주서 연 단위까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도입
“근로 유연화” “처우 외려 악화”

노동계 “주 69시간 이상 가능”
노동부 “극단 가정, 목적 폄훼”
한국 근로시간 세계 최고 수준
10명 중 6명 “근로시간 길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03.12.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03.12.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확정 추진키로 한 것을 두고 경영계가 일찍이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밝힌 반면, 노동계에선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시간을 두고 ‘노동시간 유연화’다 ‘주5일 자정 퇴근법’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정부와 노동계에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OECD 나라 중 가장 길게 일하는 나라 중 하나인 만큼 근로시간 자체를 줄여가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주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가능케 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확정하고 내달 17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정부 개편안은 연장근로 시간의 관리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주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단위를 탄력적으로 운용함으로써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집중근로를 허용하되 월 52시간, 분기 140시간, 반기 250시간, 연 440시간 범위에서 총량을 넘지 않도록 한 방안이다.

◆근로시간 논란… “주 69시간” “취지 왜곡”

이 개편안에 따르면 관리단위를 월로 할 경우 근로자들은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정부는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시간 4시간당 30분의 휴식시간과 근로일 간 11시간의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등 근로자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따라 11시간 연속휴식권 보장 시 일주일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하거나 휴식권 보장 없이 최대 64시간 근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노동계 일각에선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개월로 할 경우 특정 주에 몰아서 근무하면 월~금 5일간 내내 12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휴일근로수당을 주면 주 7일 근로도 가능하기에 주 7일 근무가 법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개편안을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평일 5일 12.5시간 근무에 토요일 1일 1.5시간 근무로 1주 최대 64시간까지도 근무가 가능해진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근무시간 개편안을 시뮬레이션해 본 하나의 결과. (제공: 직장갑질119) ⓒ천지일보 2023.03.13.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근무시간 개편안을 시뮬레이션해 본 하나의 결과. (제공: 직장갑질119) ⓒ천지일보 2023.03.13.

이들은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9시에 출근해 24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주 5일 내내 가능해지고 그러고도 토요일에 1.5시간을 더 일할 수 있다”면서 “정부는 몰아서 일하고 쉬자면서 주 4일제도 가능해진다고 하는데 그렇게 근무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없이 일하면 주 4일 내내 하루 8시간 근로에 연장근로 8시간으로 하루 16시간까지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경우 주 4일 내내 아침 9시 출근 새벽 4시 퇴근, 즉 하루 24시간 중 19시간을 회사에 있어야 한다는 계산을 내놨다.

그러나 이러한 장시간 근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단순히 1주 최대 근로시간을 64시간이나 69시간으로 산출한 뒤 이를 일반화하는 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동부 측은 “연속 밤샘 노동 주장은 1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통상 월∼금, 9∼18시 근무)을 무시한 채 1주 64시간을 일시에 몰아 쓰는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의 취지와 내용을 심각하게 왜곡한다”며 “64시간 상한은 불가피하게 특정주에 집중근무를 하더라도 연장 1주 24시간(법정 1주 40시간)을 넘지 말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민주노총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03.12.
민주노총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03.12.

노동부는 실제 근로시간 운영 현황도 그 근거로 들었다.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 평균 근로시간은 지난해 38시간을 나타내 40시간을 넘지 않으며 월평균 연장근로시간은 10시간(법정 한도의 1/5 수준), 주 평균 근로일수는 4.7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황과 통상적인 사업장 근무방식과 근무형태(교대제 등) 등을 고려할 때 연장근로를 극단으로 몰아 쓰는 가정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와 관련 개편안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노동부 측은 “감독행정역량을 총동원해 사전 악용 사례를 예방·근절하겠다”며 “IT, 사무직 등에서 장시간 근로 회귀 우려가 있는데, 지속적으로 관련 분야를 모니터링하고 적극적인 감독과 악용사례 신고센터 운영을 통해 현장에서 불법과 편법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OECD ‘야근 공화국’ 오명 한국

근로시간과 관련해선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유독 과도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020년 기준 1908시간으로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OECD 나라들 중 가장 길다. OECD 회원국들 평균 연간 근로시간이 1687간인 점을 고려할 때 한국 근로자가 다른 나라 근로자보다 한해 평균 221시간, 독일과 같은 선진국과 비교할 시 ‘석달’ 가량을 더 일하는 셈이다.

장시간 근로자의 비율 역시 주 48시간을 초과한 한국의 장시간 근로자 고용 비율은 17%로, 주요 선진국들이 5% 전후의 값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야근공화국’이라는 말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국민 10명 중 6명은 한국이 ‘노동시간이 길다(59.9%)’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1월 13일부터 16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다. 이 조사에서 ‘노동시간이 짧다’라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박성우 노무사는 “한국 사회에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만큼 목표는 장시간 노동체제의 실질적인 종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재작년 중·고령 근로자를 대상으로 장시간 근로가 근로자의 우울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주 53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를 한 사람들은 주 35-40시간 일한 근로자와 비교해 우울감 수준이 현저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화해야 한다”며 “특히 국내 사업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50인 미만의 소규모의 경우 주52시간제 적용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과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적절한 근로자 건강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가 논란도… “한달 가능” “있는 거도 못써”

정부는 실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자 휴식권 강화 등을 위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업무가 많을 때 초과근무를 저축해뒀다가 추후 휴가 등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처럼 현장 상황에 맞춰 실효적으로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추가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제공: 고용노동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제공: 고용노동부) 

노동부 측은 “연차 휴가와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함께 활용함으로써 안식월이나 제주 한 달 살기 등 생활경험 등 장기휴가가 가능해진다”며 “저축계좌제에 적립한 시간을 휴식·자기 개발·육아 등 필요할 때 사용하거나 자격증 취득 등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자기 계발, 퇴직 후 창업 등을 위한 교육 이수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차 휴가도 눈치 보여 못 쓰는데 한 달이나 휴가를 간다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무사모임은 “정부 스스로 인용한 자료에서도 연차를 모두 소진하는 기업은 40%에 불과한 상황에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제대로 작동될 리 만무하다”면서 “정부는 설익은 개편안을 제시할 게 아니라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불법적인 관행부터 점검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휴가 사용을 보장하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한 달 휴가가 가능하려면 한달 30일 휴무일 총 8일 가정 시 22일 치의 근로시간인 176시간분(8시간*22일)의 연장근로수당을 적립해야 한다. 연장근로를 하면 1.5배 가산 시 최소 117시간(117시간*1.5)의 연장근로를 해야 22일 치인 176시간분 연장근로수당이 적립돼 한 달 휴가가 발생한다. 117시간의 연장근로를 하려면 하루 12시간(법정근로시간 8시간에 연장근로시간 4시간)씩 30일(4시간*30일, 총 120시간)이나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반면 정부는 우리나라의 연차 사용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근로시간저축계좌제 활용 유인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동부 측은 “저축계좌제는 근로 생애에 걸친 일·생활 균형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실근로시간 단축에도 효과적”이라며 “다른 사업장의 휴가 사용을 촉진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기업의 필요에 따라 꼼수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저축휴가로 사용하지 않고 남은 적립 시간은 다시 임금으로 정산·지급해야 하므로 이를 위반하면 임금체불에 해당한다. 이 경우 근로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사건 제기, 감독 청원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 적극적인 감독과 악용사례 신고센터 운영을 통해 불법·편법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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