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춘향은 옥중에 갇혀 죽음 직전 삶을 끊으려 했다. 변학도의 마수에서 벗어나 한양 낭군에 대한 정절을 지키려면 극단적인 방법밖엔 없었다. 월매에 이끌려 춘향을 옥중에서 만난 이도령은 목숨만은 지키라고 당부한다.

춘향이 서방님을 괄시 말라고 호소하는데 판소리로 들으면 눈물겹다. ‘…어머님 나 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입던 비단 장옷 봉장 안에 들었으니 그 옷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 곱게 도포 짓고 백방사주 긴 치마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관, 망, 신발 사드리고 절병, 천은비녀,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었으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不肖) 찮게 하여 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 두어 무엇할까…(하략)’ 

자신의 옷가지를 팔아 거지행색으로 돌아온 낭군을 위해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도령에게 눈물로 당부한다. 

‘…(전략)서방님 나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寥寂)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수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다시 오련마는 불쌍한 춘향이는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까. 신원이나 하여주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이본 춘향전 하나는 이때 이도령이 제발 목숨만은 끊지 말아 달라고 한다. ‘죽고 사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려있으나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울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느니라.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렇듯이 설워하느냐’라고 타이른다.

춘향은 극단 선택을 하지 않은 탓에 그 이튿날 목숨을 구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드라마틱하게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민초들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사형과 유형, 간질과 도박 등 고통스러운 운명을 겪어야 했다. 황제 니콜라이 1세의 학정에 저항한 그는 반체제 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됐다. 

가혹한 강제 노동형을 당한 그는 고통을 감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생활은 생활이다. 어떠한 불행 속에 있어도 낙담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는가’라고 자문하며 절망을 이겨냈다. 파산은 위대한 작가가 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밑바탕이었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작품을 썼으며 이때 완성한 소설이 불후의 명작 ‘죄와 벌’이었다. 

세계적인 톱 여배우인 중국의 판빙빙(42, 范氷氷)이 탈세 논란 이후 5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왔다. 독일에서 열린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기자회견에 등장했다. 일설에는 사망했거나 불행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그녀는 기자회견장에서 “인생엔 굴곡 있는 삶이 있다. 낮은 곳에 도달하면, 다시 서서히 올라가게 돼 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은 다 괜찮다”고 덧붙였다.

지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튀르키예 국경 인근의 작은 도시에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5층짜리 주거 건물 붕괴 현장에서 탯줄이 연결된 갓난아기가 구조된 것이다. 엄마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지만 아기는 살아있었다. 신생아는 타박상과 저체온증이 있었으나 인큐베이터 안에서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고 했다. 지진피해로 5만명이 목숨을 잃은 튀르키예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고 있다. 자살율이 세계 최고라는 한국. 죽음의 문턱에서 번민하는 이들이 춘향이나 판빙빙처럼 ‘굴곡된 삶 뒤엔 희망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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