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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품질연합 김종훈 대표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누구보다 자동차에 애착을 가졌어요. 남들 6시 땡하면 집에 갈 때 나는 자동차와 살았습니다. 소비자 권익을 위해 현장을 스승 삼아 공부했습니다.”

악바리에 억척이.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그는 1988년 한국소비자원에 처음 입사해 소비자 권리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소비자원은 1987년에 설립됐다. 김 대표는 불모지 같은 곳에서 기준을 세워갔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건 1996년부터다. 그가 처리한 자동차 관련 소비자 불만 건수는 약 3500건에 달했다. 2000년부터는 다수의 차량에서 동일한 결함이 발생하는 차량을 12년간 조사했고 그 수는 233건에 이른다. 그의 손을 거쳐 무상수리를 받은 차량만 무려 1061만여대다. 국내 생산차는 물론 수입차까지 자동차 결함을 감시해온 자동차 전문가다.

▲ 지난 6월 29일 서울 구로동 한국자동차품질연합 사무실에서 김종훈 대표를 만나 20년간 자동차 관련 소비자 불만을 처리한 과정을 들어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 구로동의 한국자동차품질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훈 대표는 “초창기 소비자원은 업무처리 매뉴얼이 없었다”며 “오후 6시가 되면 남들처럼 칼퇴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업무 매뉴얼부터 만들기 시작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무역업을 경험한 상사맨으로서 해외 화물관련 불만 처리를 위한 매뉴얼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야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소비자원에서 퇴임하기까지 담당한 분야는 자동차다. 무엇보다 애착이 갔다고 했다. 하지만 전공이 자동차분야가 아니기에 잘 알지 못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했을까. 소비자들을 대신해 자동차업체들과 싸우려면 알아야 했다. 알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 김종훈 대표의 주요 저서. 김 대표는 직접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다니며 얻은 자동차 지식들을 하나하나 노트에 기록해뒀다가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 대표는 “1996년 처음 자동차 분야를 담당했지만 카센터(자동차정비소) 주인과 첫 싸움에서 망신을 당했다”며 “자동차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고는 합의도 할 수 없기에 악착같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대우자동차가 24시간 정비를 했는데, 5시에 퇴근하면 곧장 자동차정비소에 교육을 받으러 갔다”며 “처음에는 냉대를 당했고, 일주일 내내 귀찮게 매달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2달여 동안을 현장 공부를 했다. 공부한 기록들을 꼼꼼히 정리하다보니 책이 4권 정도가 됐다. 김 대표의 철저한 기록 정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명함부터 업무 처리 시작부터 결과까지 낱낱이 스크랩해놨다.

김 대표는 이렇게 전문성을 익혀가며 2000년에는 생활안전팀장이 됐다. 다양한 분야를 관장했지만 여전히 자동차에 애착이 갔다. 특히 그는 자동차 분야 불만 접수 건 중에서 동일한 부품에 문제가 있다는 여러 사례들을 발견했다. 당장 결함은 아니지만 작은 불편 사항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러한 불편 사항을 수리하는 것을 캠페인이라고 불렀다. 김 대표는 “리콜(결함 수리)은 자동차 관리법상 운전자에게 통보가 되지만 캠페인(작은 수리)은 모르면 못받는다”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업체들은 이러한 일들을 강력히 반대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캠페인 사항이 리콜 문제로 가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시정돼야 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업체는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며 캠페인 사항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수출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잡아 고쳐야 한다고 반박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 대표가 2000년부터 12년간 조사한 결함 및 캠페인 건수는 232건에 이른다. 이 중 6년간의 수리내역, 공임 등을 조사해보니 약 1800억원 정도가 소비자가 이득을 본 셈이다. 김 대표는 “나는 신출내기였다.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업체들과는 게임이 안 됐다”며 “그렇기에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어느 부품이 엔진에 어디에 붙어 있는지 등을 숙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품이 고장났으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부품을 교체했을 때 개선이 됐는지까지 악착같이 추적을 했다”고 말했다.

▲ 김종훈 대표는 한국소비자원 자동차 분야 전문가로서 교통방송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은 당시의 모습을 담은 액자 ⓒ천지일보(뉴스천지)

◆“더 달리고 싶어서 시민단체 활동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온 김종훈 대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동차 관련 소비자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자동차 결함 감시 시민단체인 한국자동차품질연합을 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소비자원에서 분쟁조정1국장, 공산품팀장, 생활안전팀장, 자동차부문 조사위원, 노조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소비자를 위한 자동차 관련 책 발간은 물론 각종 언론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교통방송에서 방송가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지금도 자동차 관련 이슈가 생기면 칼럼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린다. 최근에는 블랙컨슈머 관련 글도 쓰고 있다. 수십년간 활동을 해오며 만난 기자들이 지금까지도 찾아오고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김 대표는 아쉬움이 있다. 일을 더 하고 싶은데 이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서울시에 단체를 등록하려고 하니 해당되는 업무가 없다고 거부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자동차 관련 자문을 해주겠다고 문을 두드렸지만 필요 없다고 했다. 오랜 기간 근무했던 한국소비자원도 야속하다. 전문성을 갖춘 이를 고문으로 두고 노하우를 얻어갈 수 있을 텐데 그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고령화시대에 연륜있는 이들을 방치하는 것도 국가적인 낭비라고 말했다. 그는 더 달리고 싶어했다. 아직 더 달릴 수 있는 열정이 그에게는 있다.

※ 본 기사는 7월 1일자 천지일보 경제면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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