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메르스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꽤 파괴력 있는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바로 ‘개정 국회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그것이다. 당초 여야 합의로 통과된 ‘개정 국회법’을 놓고 박 대통령이 위헌성을 거론하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두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 일부 표현을 바꿔서 정부로 이송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마저도 “단어 한 글자 바꾼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뜻이다.

청와대의 반격, 유승민 사퇴하나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곧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강한 불신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간 유승민 원내대표의 언행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신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테면 ‘증세없는 복지’에 대한 소신 발언이나 앞장서 ‘사드’ 배치를 주장하는 등의 발언도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의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국회법 개정안 협상에서 당청 간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까지 곪아 터진 셈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곧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비토’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유승민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즉시 원내대표직을 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겨서 다시 표결에 들어가더라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만약 개정국회법을 통과시킬 경우 박근혜 대통령은 큰 내상을 입게 된다. 국정장악력이 크게 흔들리고 당청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도 이를 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반대로 새누리당 입장이 바뀌어서 부결시킨다면 집권당으로서의 위상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대통령 한 마디에 ‘개정 국회법’의 운명이 달라진다면, 도대체 집권당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당청관계의 균형을 강조했던 김무성 대표의 이미지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야당의 반발과 여론의 역풍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래저래 유승민 원내대표는 어떤 경우에도 책임론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청와대의 ‘살아있는’ 메시지를 확인시켜 준 뒤에 정치적 논란을 접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굳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다음엔 김무성 대표가 결단해야 한다. 청와대의 의중대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할 것인지, 아니면 당당히 재의에 들어가서 당초 합의대로 통과시킬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에,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 여부에, 그리고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와의 일전에 모두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일 것이다. 여권 파워게임의 ‘3차 함수’ 같은 양상이다. 정답은 누가 어떻게 내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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