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이 연일 화제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정책기조가 청와대와 충돌하고 김무성 대표와도 결이 다른 모습에 다소 불편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 연설로 밝히는 것이 과연 잘한 것이냐는 비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유 대표의 깊은 현실적 고민과 결단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새롭게 짜야 할 정책 아젠다의 화두를 미리 제시한 듯 보인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정책’이 허구였다고 고백했다. 복지 수준도 ‘중부담 중복지’로 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야가 새로운 논의의 틀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따지고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원했던 의제를 그대로 유 대표가 밝힌 셈이다. 그러면서 유 대표는 양극화 극복을 위해 노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집권당 대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치고는 근래 볼 수 없었던 파격이요, 신선한 접근이다. 야당도 이 대목에서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은 일부 내용만 제외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그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니 그보다 더 진보 쪽으로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판 ‘제3의 길’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얘기마저 들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이른바 ‘초이노믹스’의 파산을 선고한 셈이다. 유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서민과 중산층 편에 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보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더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은 어쩌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긴 호흡으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의 핵심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산물일 수도 있다. 최근 여야가 서로 경쟁하듯 ‘경제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유 대표의 연설은 결정적으로 ‘의제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이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정치적 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보수의 혁신’ 그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의제 선점에만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진정성 획득일 것이다. 앞으로 ‘실행 로드맵’까지 나온다면 더 놀라운 일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보수의 혁신, 그 결실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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