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애당초 담뱃값을 올리지 말았어야. 값을 올리더라도 국민 건강증진을 인상 이유로 내세우지 말았어야….”

담뱃값은 원래부터 제조원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편이었다. 인상 이후는 물론이고, 인상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담뱃값, 2004년부터 10년간 2500원이었다. 담뱃값 중 유통 마진을 포함한 제조원가는 39%에 불과한 950원, 세금이 61%인 1550원이었다. 하루 담배 한 갑을 피우는 흡연자를 기준으로 연 57만원의 담뱃세를 부담해왔다. 이번에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올라 1년에 부담하는 금액이 121만원으로 지금보다 64만원이 더 올랐다. 4500원 중 무려 73.8%인 3323원이 제세부담금이고 담배 제조회사와 판매점주들의 중간 이윤을 포함한 제조원가는 26.2%인 1177원이 된다. 담뱃값 인상이 결국 담배에 붙는 간접세를 끌어올린 것일 뿐임을 부인할 수 없다.

흡연자들이 왜 과도한 제세부담금을 물어야 하는가. 수익자부담 원칙이라고 하지만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은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담뱃값을 올려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도 대부분 잘 모른다. 흡연자들을 위해 쓰이는 비중도 별로 높지 않다. 흡연자들은 유럽이나 싱가포르처럼 흡연공간이라도 충분히 보장하면서 담뱃세를 거둬가라고 반발하고 있다. 제세부담금은 담배소비세와 교육세 등 지방세, 건강증진부담금, 폐기물부담금, 개별 소비세 등을 말한다. 건강증진부담금만 해도 한 갑당 354원에서 841원으로 뛰어올랐다. 여기서 건강증진부담금이 한 해 1조 7007억원가량이다. 앞으로는 더욱더 큰 천문학적인 덩치가 될 것이다. 올해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예산은 1475억원으로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별로 큰 비중이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과연 국민 앞에 정직한가. 그리고 신뢰할 만큼 지혜로운가. 유난히도 끔찍한 사건 사고가 많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명절 연휴 최고의 화두는 담뱃값 문제였다.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명목 아래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던 정부였다. 정부의 금연정책 자체야 무어라 탓하겠는가. 그런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기존 담배보다 가격이 저렴한 저가 담배 도입을 검토할 것을 당 정책위원회에 지시했다. 유 원내대표는 경로당 등 0민생현장에서 수렴한 의견을 토대로 노인·저소득층을 위한 저가 담배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설 연휴 동안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그는 “검토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고 당장 추진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다. 저가 담배는 국민건강을 챙기겠다는 당초 입장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노인·저소득층의 건강은 외면해도 되느냐,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혹은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말하자면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세수 확보를 위한 서민 증세였음을 여권이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담뱃세 인상이 겉으로는 국민건강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 식 서민 등골 파먹기였음을 실증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에 정직한 목소리, 용기 있는 지적이었다는 반론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새로 여당의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다. 그로서는 자신이 정책에 관여하기 이전 시행된 일방적인 금연 정책의 태생적인 문제점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여기에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심각한 물가고에 주목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최근 한 잔에 200~500원씩 커피값을 올리는 등 일반인들의 체감물가지수는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가 거의 유일한 기호품이다시피한 노인·저소득층이 저가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경제적 압박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혹자는 건강에 좋지 않은 저질 저가 담배를 노인·저소득층에 공급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개별소비세 등 제세부담금을 낮추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담배를 시중에 공급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담뱃값 원가야 단돈 천 원도 안 된다.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필터도 부착하자. 잎담배도 좋은 재료로 쓰자. 역설적이지만 노인·저소득층의 건강을 위해.

질 좋은 저가 담배를 제조하자. 이와 병행해 막대한 액수의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정부가 니코틴 중독자에 대한 재활 노력을 하는 등 금연정책은 금연정책대로 활발히 펼쳐야 한다. 담뱃값은 인상 이전 원래 수준으로 환원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질 좋은 저가 담배를 공급해 서민들에게 과도한 간접세를 부과하는 조세불공평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불쌍한 우리 경제’에 돌파구가 없다. 거대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거나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의 유휴자원을 활용하며 서로 윈윈이 되게 해야 할 텐데 여전히 안갯속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했다. 부자가 세금을 더 부담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런 특단의 복안이 없다면 증세 없는 복지는 현실적으로 어불성설이다. 증세를 하거나, 혹은 복지를 줄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민심과 진심으로 소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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