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혹자는 말한다. 한국의 폐쇄적 지역주의 정치, 국회의원들의 주먹구구식 비전문성, 저질 국회 폐습은 패거리정치, 거대 정당의 나눠먹기 식 공천 등에 기인하며 다시 이의 뿌리는 지금의 소선거구제라고. 필자는 이 견해에 거의 맹목적으로 동의한다. 소선거구제는 한 지역구에서 최다득표한 1인을 선출한다. 지역 유권자들이 애정을 담은 한 표 한 표를 행사해 자신과 비교적 친밀한 유대관계가 있는 지역 인사를 의정의 대표로 내세울 수 있다. 지역과 상관없는 전국적인 인물보다는 지역 상황을 잘 알고 지역민들을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군소정당 난립이 방지되고 정국의 안정화도 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된다. 지역 표밭 일구기, 즉 득표에 밝고 선거에만 능한 전문 ‘정치꾼’이 득세한다. 바이어스(bias) 현상, 즉 득표율은 더 높았으나 의석수에서는 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거대 양당이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획정하는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의 폐해에도 시달린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하다. 영남이나 호남에서 거대 양당은 득표 비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60~70% 지지받은 정당이 100% 다 갖는 ‘올 오어 낫싱’이다. 약자들, 소수 세력들의 정치 참여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정치의 꿈을 구현해줄 신인들이 부상할 기회가 박탈된다. 가진 자가 더 갖게 되는 승자 독식 방식이 다름 아닌 소선구제다. 당연히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선호한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펼치는 것을 틀어막는다. 영·호남은 각각 특정 정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므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일당독재이고 국회의원들은 그러한 ‘갑(甲)질’ 기득권에 안주하기만 한다. 소수 정당은 설 자리가 없다. 후진적인 붕당정치, 거수기정치, 독과점정치만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득표율대로 정당이 의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정말 모순인데.

만성적인 갈등과 대립이 해소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양당의 힘겨루기가 극단을 치달아 정치가 마비되고 만다. 올해가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다. 얼마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대 1로 축소하도록 결정함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획정하게 된다. 이번에 선거구제조정 뿐만 아니라 선거제도 전반에 대해 대검토해 국회의원 선거 제도 전체를 원점에서 손보아 정치 개혁, 선거 개혁의 핵심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개특위가 선거제도 개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더욱 증폭되고 말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번만큼은 대안이 나와야 한다. 무엇이 대안인가.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 증원, 양원제, 대선거구제, 국민리콜제 도입 등이 검토돼야 한다는 게 정치권과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중앙선관위도 움직이고 있다. 일응 당연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뼈아픈 고언(苦言)이 나왔다. 선관위는 현재로는 소수 의견이 사장(死藏)되므로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일치되는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를 살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다득표 차점자를 구제하는 석패율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해 주목을 끌고 있다. 대다수 유럽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지역으로 나눠 명부를 만들어 득표율에 따라 선출하는 것으로 진지하게 연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가 경제규모가 커졌다. 사회는 엄청나게 복잡다기해지고 이해관계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의회 권능이 각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각계 전문가가 더 많이 여의도에 진출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한국은 국회의원 수가 많지 않다. 영국만 해도 인구 10만명당 의원이 1명이다. 이로 미뤄 전체 인구 5000만명이면 의원은 500명은 돼야 한다. 물론 지금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게 국회의원들인데 그 수를 왜 더 늘리려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망국적인 지역주의는 극복돼야 한다. 선거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게 국민을 섬기는 선량들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전문성, 지역대표성, 후보선정 과정의 적법성 등을 담보한다는 전제하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정책 선거를 위해 민의가 그대로 국회의석 수에 반영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돼야 한다.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율이 의석에 제대로 반영돼야 하지 않겠는가. 최우선적으로 소선거구제부터 개혁해야 유권자가 손가락질하는 한국 정치가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겠는가.

사족(蛇足). 쓰다 보니 다소 사변적(思辨的)이고 재미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그간 적나라하게 드러난 저질 국회, 혹은 거수기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케이스 형태로 생생하게 고발하는 것을 생략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기지(旣知)의 사실이다. 향후 우리 국회가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여의도 상황’을 참담해하며 구체적으로 다룰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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