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남북경제인연합 상임고문·효원물산 회장

 
“아니, 이거 달리는 기차 맞아? 느릿느릿 기어서가네. 마치 가족을 고향에 두고 홀로 떠나가는 아비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나? 그런데 저 기적소린 왜 이리 내 가슴을 울리지?” 엊그제 길거리에서 마주친 여윈 얼굴의 어느 엄마와 아이들, 차디찬 바다를 헤치며 먹을거리를 찾던 수많은 사람들, 한쪽 발은 찢어진 고무신, 또 다른 쪽은 맨발로 걸어가던 어느 젊은 청년, 이들을 모른 체 떠나가는 내가 미워 소리치는 것인가?

96년 9월 북한나진·선봉 투자포럼에 참석 후, 미쓰비시, 미쓰이 등 일본대표단과 열차로 러시아 하산으로 향하는 중 눈앞에 펼쳐진 두만강을 바라보며 느꼈던 당시의 참담했던 내 심정이다.

북한이 나진·선봉을 국제무역자유지대로 선포하고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을 초청한 것은 대외개방의 첫 신호탄으로, 당시 투자유치대상의 주 타깃은 일본이었다. 100~150억불 대일청구권자금 타결과 일본기업의 북한유치가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의 나진·선봉 진출의 핵심정략은 정치, 군사적 요충지대로서의 가치와 그들의 숙원인 대륙진출의 교두보 재탈환(?), 유라시아철도 선점이었다. 주목할 점은 96년 나진·선봉포럼 후, 내가 목격한 일본대표단의 하산행보는 나진·하산 간 철도노선 실사였다. 그러나 북·미, 북·일 관계개선 지연, 일본인 납치문제로 일본의 유라시아철도 선점전략은 실패한다. 

2014년 11월 28일 러시아 석탄 4만 5000톤이 북한 나진항을 출발, 29일 국내에 반입됐다. 남·북·러 물류라인 구축과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실현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정부가 5.24조치 이후 최초로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을 허용’한 첫 사례가 됐다.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꿈이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냉각된 남북관계와 5.24조치다. 왜냐면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를 통한 간접 투자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북투자를 금지한 5.24조치에 자유롭지 못하며, 특히 남북 간 철도(TKR)가 연결되지 못하면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절름발이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남북경협은 정치·군사 문제를 뛰어넘어 남북을 하나로 묶고 새로운 경제동반자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평화적 통일을 유도한다. 특히 ‘통일대박론’은 ‘남북경제통합’이 선행돼야 하며, 그 첫걸음은 남북 공히 민생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박 대통령의 민생인프라구축 제언은 시의적절하며, 하루빨리 1-2경 넘는 북한광물자원개발과 북한철도 및 도로 현대화를 연계한 신경제협력사업을 실현시켜 남북을 1일 생활권으로 묶고, 동시에 평양 등 각 시·도에 물류 및 유통시스템 구축, 친환경농수축산물 연구개발, 새마을형 태양광주택조성 등 서로 윈윈하는 창조경제를 구현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각종 규제와 전쟁을 선포하신 박근혜 대통령께 호소드린다. “정치·군사문제와 민생이 먹고사는 문제는 분리해 지난 5년간 1000여 대북업체들 손발을 묶어 수십만개 일자리를 빼앗은 ‘5.24족쇄’를 풀어주세요. 한 지붕에서 정부 주도형 개성공단과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허용하고, 88년부터 분단의 벽을 넘어 평양 등 각 지방을 돌며 민간차원의 상품교역, 의류임가공, 시설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나누며 불어넣었던 시장경제의 싹을 차단시킨 5.24는 이제 혁파돼야 합니다. 그리고 여쭙니다. 나진·하산프로젝트처럼 중소기업도 우회적으로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남북경협을 재개한다면 허용하시겠습니까?”

나는 꿈을 꾼다. 북한에서 만났던 엄마와 아이들, 먹을거리를 찾던 수많은 사람들, 이들에게 남북경협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며 함께 먹고 함께 사는 ‘아름다운 만남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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