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조세저항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웬만해선 꿈쩍도 않았을 정부가 뒤늦게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보완대책을 밝히는가 하면, 21일 열린 긴급 당정회의에서는 지난해 연말정산분까지 소급적용 하겠다고 밝혔다. 이대로 두면 ‘백약이 무용’이라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잖아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서 조세저항까지 촉발할 경우엔 더 이상의 국정운영이 사실상 어렵다고 본 것이다. 수많은 혁명의 역사 이면에는 조세저항이 맞물려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억지가 빚은 참극

조세저항의 분노는 단순히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촉발된 경우는 별로 없다. 조세부담률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북유럽은 조세저항은커녕 세계 최고의 선진사회요, 가장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세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세금의 ‘공정성’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억울하게 나만 세금을 더 많이 내고, 반면에 혜택은 쥐꼬리만큼이라면 여기에 순순히 동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연말정산에 대한 조세저항의 핵심은 환급금 자체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다. 합리적이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마저도 정부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밀어붙일 때 5500만원 미만의 직장인은 큰 변동이 없고, 7000만원까지는 몇 만원 정도의 세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개인별 편차가 크지만 정부의 설명은 설 땅이 없을 정도로 빗나가고 말았다. 당시에도 야권과 전문가들 중심으로 유리지갑을 볼모로 한 ‘서민증세’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세부적인 검토 없이 오히려 ‘부자증세’라며 밀어붙였다. 거위 털을 살짝 뽑는 꼴이라고 직장인들을 속인 것에 다름 아니다. 고의가 아니라면 ‘무지’였고, 그 무지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 ‘억지’로 변질돼 결국 참극이 되고 말았다.

민심 이반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뒤늦게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마저도 억지의 연속이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보완책이라고 내놓았지만 몇 가지 미봉책 외에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날 청와대 티타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좋은 정책을 국민이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도 ‘적게 떼고 적게 받는’ 방식으로의 전환에 따른 일종의 ‘착시효과’로 서민증세는 결코 아니라고 해명했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9300억원의 세수가 늘었는데 증세가 아니라고 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나무랐을 정도였다. 무지보다 더한 억지가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무지는 공부를 하면 되지만 억지에는 약도 없다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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