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지난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진보당은 사실상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닌가 싶다. 해방이후 한국진보정치사의 맥을 이어왔던 그 역사도, 지난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10.3%를 얻으며 무려 13석을 획득하며 기염을 토했던 그 성과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진보당의 3만 진성당원, 10만 당원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헌재로부터의 사망선고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도대체 헌재가 어떤 곳이길래 합법공간에서 다수 의원들을 배출한 진보당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까지 박탈한 것인가.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옳은 것일까.

정치의 사법화, 그 결정판을 보다

헌재가 진보당을 해산한 법리가 옳으냐, 옳지 않느냐 하는 구체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겠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규정한 대로의 판단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헌재의 정치적 편향성, 과잉해석 그리고 증거가 불충분한 사안을 유추해서 내린 결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법적 근거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직까지 박탈한 것은 지나친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계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느 누구도 헌재에 국회의원의 자격심사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64조 2항)은 국회의원의 자격심사는 오직 국회만 갖도록 하고 있다. 헌재는 그런 권한이 없다.

문제는 헌재 재판관들이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이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탄생한 현행 헌법에 헌법재판소를 설치한 것은 정치사회적 약자를 거대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헌재는 사회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적 가치의 확장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에 헌재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9명이 10만명의 당원과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 현실을 민주주의의 발전된 모습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50년대 중반 당시 서독이 공산당을 해산시켰던 사례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여의도에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툭하면 고소 고발로 가거나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기 일쑤다. 정치의 빈곤이 초래한 정치의 사법화 현상, 그것은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이제는 헌재가 특정 정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의원들의 직까지 박탈하는 상황까지 온 셈이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 그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정치가 사멸하는 곳에는 법치를 가장한 기득권 세력들이 판을 치기 마련이다. 정치적인 것은 정치에 맡기는 것이 옳다. 진보당 해산 문제와 소속의원들의 정치적 운명도 국민에 맡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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