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우리에겐 너무나 잘 알려진 기원전 중국의 고사성어 얘기다. 진시황이 죽자 혼란한 정국을 틈타 환관 조고(趙高)는 진시황의 장자 부소와 장군 몽염을 계략을 꾸며 죽게 만든다. 그리고 나선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삼는다. 계략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호해마저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이 천하를 손에 쥐려고 한다. 이때 나온 고사성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조고는 황제 호해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며 “이것이 말입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는가?” 물으면서 신하들을 쳐다본다. 이에 겁을 먹은 신하들은 일제히 “말입니다”라고 답한다는 얘기다. 물론 황제 호해마저 죽임을 당하고 끝내 조고도 목숨을 잃게 되지만, 지록위마의 교훈은 결국 국정을 농락한 환관으로 인해 모두가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이상하다

점입가경이다.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이른바 ‘십상시 문건’을 놓고 정윤회는 ‘조작’이라고 하고,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60%는 사실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고나면 새로운 소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관련 내용만 봐도 정윤회는 평범한 사인(私人)만은 아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은둔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정농단의 실체도 아직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으니 잠시 지켜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검찰이 진실을 가리기 전에 청와대가 먼저 답을 내놓은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관련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청와대는 일찌감치‘찌라시’수준으로 격하시켰다. 뒤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말 도 안 되는 얘기’ ‘근거 없는 얘기’로 낙인을 찍어버렸다. 동시에 검찰에는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는 모순적인 발언을 했다. 게다가 문서 ‘내용’이 아니라 문서 ‘유출’에 더 방점을 찍는 방향까지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일종의 가이드라인(지침)이 제시됐는데, ‘힘없는’ 검찰이 어떻게 진실을 밝히겠는가. 잘 모르지만 검찰의 수사결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박 대통령이 일종의 지침을 내린 직후 진실공방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인터뷰가 결정타였다. 결국 정윤회 씨는 이재만 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을 뒤늦게 실토하고 말았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고백이 없었다면 정윤회 씨는 아직도 관련 내용을 숨겼을 것이다. 어쩌면 큰 강둑에 작은 구멍이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도 지록위마의 교훈은 생생하게 반복될 것인가. 환관의 국정농단, 그 끝은 ‘국정의 몰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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