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잘 키운 토종 IT기업 한 곳이 못난 권력에 의해 난타당하고 있다. 요즘 카카오톡(카톡)에서 텔레그램 등의 다른 메신저로 이동하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 소식이 자주 전해지고 있다. 손쉽게 애용하던 카톡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고객이나, 틈만 나면 창조경제를 강조하던 정부 모두 불편하다. 사이버 망명을 촉발시킨 검찰과 경찰도, 눈 뜨고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사측도 모두 불편할 것이다. 모두가 불편하고 안타까운 이런 사태가 왜 발생한 것일까. 그리고 사이버 망명의 정치적 함의는 무엇일까.

무능한 권력과 무책임한 기업
굳이 헌법 17조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카톡은 개인끼리 주고받는 아주 사적이고 비밀스런 소통 공간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면, 아니 검찰과 경찰 등의 사정기관이 항시 감시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오프라인이라면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당장 불법 논란으로 번질 일이다. 그러나 온라인이다 보니, 그리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는지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탈퇴하고 망명의 길을 택한 것이다. 벌써 수백만 명이라고 한다. “차라리 내가 떠나겠다”는 절망감과 분노의 표시라 하겠다.
실제로 검찰이 온라인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를 자체 판단해 포털 측에 삭제를 요청하고 ‘특정 단어’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카톡방도 이미 곳곳에서 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참으로 무섭고도 무지한 세상이다. 인터넷이나 카톡에 권력이 금기시 하는 단어만 쳐도 모니터링이 되고 검찰이 맘만 먹으면 사적 공간까지 털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공포에 다름 아니다. 사이버 망명은 이런 나쁜 권력에 대한 도전이요, 저항인 셈이다. 망명의 내면에는 권력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이 배어 있다.

설사 나쁜 권력이 고객들의 사적 공간을 들여다보겠다고 하더라도 사측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 고객의 신뢰로 생존하는 IT기업이며, 동시에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직결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대표 주자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카톡 간부들은 처음에 정부의 편에 섰다. 심지어 고객들의 저항과 비판을 조롱하는 말까지 거침없이 쏟아냈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오만함과 고객들의 프라이버시권 침해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했다. 이런 기업을 믿고 맘 편하게 자신의 생각과 내밀한 얘기들을 주고받은 고객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측에 대한 배신감과 저항 의식은 그대로 망명의 길을 택한 것이다.

미국의 트위터가 공안당국의 협조 요청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편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객의 편이다. 이것은 고도의 전략이 아니라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식마저 뒤집어지고 있다. 뒤늦게 카카오톡 대표가 오버하는 말로 고객보호를 외치곤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신뢰를 잃은 IT기업은 생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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