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이 지구상에서 국가 원수가 40일 동안이나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잠적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 말고는 없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유언비어와 괴소문의 생산과 유포가 유독 심한 나라다. 아마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짐작컨대 난리가 나도 여러 번 났을 것이며 궁금증을 못 이긴 군중의 침범에 의해 청와대의 울타리는 남아나지를 못할 것이다. 물론 공사 활동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은 있을 턱도 없다.

북 권력의 수장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무슨 일로인가 두문불출하는 동안 공개적으로 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을 여는 ‘인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연금설, 쿠데타설, 심근경색·신부전증·당뇨·통풍설 등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아무 말이나 자유스럽게 만들어지고 통용되기 마련인 우리와 같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들에서 나온 근거가 희박한 말들이었다. 북에서 만약 어느 ‘인민’이 어디다 드러내놓고 이런 말을 하다가는 촘촘히 깔린 탐지망이나 밀고자에게 포착돼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렇기에 아무도 최고 권력자나 당에서 시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 말고는 조금이라도 거기서 벗어나는 소리는 입도 뻥긋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민’은 그들 정권의 입인 관영매체가 보도한 것이나 각종 ‘학습’을 통해 배우고 확인된 말만을 하고 살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맛본 우리에게 그 같은 상황이 강요된다면 우리 국민은 필시 정권이라는 배를 띄우는 평화스러운 바다가 아니라 그 배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격랑(激浪)의 거친 바다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북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아서는 외계(extraterrestril)다. 남과 북은 한 핏줄이로되 분단의 장기화로 이렇게나 딴 세상으로 이질화돼버렸다.

따라서 우리의 숙원이며 기필코 이루어내야만 하는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은 이런 외계(外界)의 사회를 품에 안아 동질화(homogenization)를 이룩해내야 하는 작업이나 다를 것이 없다. 북이 도발할 때 정당방위로서 가차 없이 응징하는 것은 국가의 체모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북이 영원한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대상이며 또 그렇게 만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저들처럼 무자비함만 발휘할 수 없는 딜레마를 안고 산다. 일제로부터의 해방된 날을 기점으로 한다면 우리는 거의 분단 70년의 아픔을 겪는 중이다. 그 사이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으로 글로벌 트렌드(trend)와 스탠더드(standard)에 충실하며 또 그것을 창출하는 당당한 국가가 됐지만 북은 비정상적 정권 유지와 도발과 협박을 일삼는 모험주의로 고립과 폐쇄, 국제적 제재를 자초해왔다.

급기야 비정상인 것과 글로벌 가치를 거스르는 일탈이 정상인 것으로 굳어지게 돼 그것을 바로잡다가는 저들 체제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의 국운과 종합적인 역량으로 보아 통일은 필연이라고 볼 때 북의 비정상적인 체제운영과 일탈의 패악이 쌓이면 쌓일수록 남북 간 동질화 작업은 어려워지며 그 부담은 통일 후 우리의 부담으로 가중된다. 국민의 일각에서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통일을 별반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통일 후 피폐하고 낙후한 북에 대한 투자는 재원의 낭비가 아니라 외국 투자를 유치해 재원을 투입하더라도 궁극에는 대박을 캐는 투자 행위라는 것을 정부가 앞장서 국민에게 이해시킴으로써 통일에 대한 염원을 뜨겁게 달구어 식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북의 김정은은 잠적할 때나 마찬가지로 예고 없이 인민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는 지팡이를 짚은 채 위성과학자 주택단지를 시찰했다. 한창 나이에 병자나 노약자가 짚는 지팡이라니 그 모습을 인민에게 부러 보여주고 싶었는지 마음이 급했는지는 모르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인 것은 틀림없다. 김정은의 등장에도 저들의 매체는 조용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언론 매체들은 화면과 지면을 김정은과 관련한 콘텐츠(contents)로 도배질을 하다시피 했다. 저들의 발표가 워낙이 부족하므로 거의 대부분은 추측이며 짐작들이다. 이 때문에 되풀이되는 우리 매체들의 습성이다. 그들이 탁구공을 땅에 떨어뜨리더라도 우리 매체에서는 요란한 천둥 번개로 보도되기 마련이다. 그런 습성을 김정은과 북 권력 실세들은 한껏 이용한다. 콘텐츠에 기여하는 것으로 본다면 김정은은 그야말로 우리 매체의 특급 VVIP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우리 언론을 이용하거나 역이용하거나 우리 언론을 움직이는 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북한 소식은 돌발성과 불가예측성 비상식성 비공개성 때문에 우리 국민의 흥미를 끈다. 동선이 감추어지는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얘기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저들이 열린 사회라든지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 재단이 가능한 정상사회라면 그 같은 흥미는 많이 떨어질 수 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보다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더 핫뉴스가 되는 이치와 같다. 할아버지도 아니고 젊은 청년 지도자가 지팡이에 의지해 오랜만에 나타났는데도 그들 당국은 아무 설명이 없고 인민과 매체도 벙어리다.

그 같은 통제 사회는 아무리 통제가 엄격해도 암암리에 입소문이 번지고 유언비어나 괴소문이 날뛰는 법이다. 차라리 우리 언론처럼 추측이나 짐작으로 소설을 쓰더라도 국민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떠들어주는 수단이 있다면 조금은 사정이 나아질 수는 있다. 그건 그렇더라도 허무맹랑한 북의 소식에 우리 국민이 너무 휘둘리거나 일희일비하게 환경이 조성돼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통일의 주체는 우리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나 국민, 매체들은 호들갑스런 모습보다는 좀 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는 되지도 않지만, 억지로 의연한 척 하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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