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영국의 런던 근교에 있는 코벤트리 대성당 앞에 ‘레이디 고다이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누드로 말을 타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인데, 영국판 ‘애마 부인’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조각상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애마 부인’ 정도로 웃어넘길 수 없는 비장한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11세기 코벤트리 지방에 레오프릭이라는 영주가 있었다. 그는 가혹하게 세금을 거뒀다. 그가 당시 잉글랜드를 통치하고 있던 데인족인지 그 전에 잉글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앵글로색슨족인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세금을 올리고 징수했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그의 아름다운 아내 고다이버(Godiva)가 나섰다.

사랑스러운 아내였으나 끈질긴 청은 귀찮았다. 영주는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을 했다. 발가벗고 마을 한 바퀴 돌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부인은 주저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소문이 번졌고, 그녀가 ‘거사’를 행하기로 한 날, 모두 창을 내리고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 과연 그날, 그녀가 누드로 말을 탄 채 마을에 등장하였다. 그런데 딱 한 녀석이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이후 사람들은 관음증을 가진 사람을 ‘훔쳐보는 녀석(Peeping Tom)’, 상식이나 관행을 깨고 대담하게 돌파하는 것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 했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다. 영국의 역사책에도 이렇게까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고대 영어로 ‘신의 선물’이란 뜻의 고디푸(Godifu)라는 실존 인물이 존재했고 그녀가 고다이버라는 것이다. 남편 레오프릭도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지 150년이 지난 뒤 ‘웬도버의 로저’가 쓴 ‘역사의 꽃들’이란 책에 그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고 이후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더해져 고다이버 전설이 완성됐다. 전설의 마무리는, 아내의 ‘누드 시위’에 감복한 영주가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해 농민들의 삶의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화가들도 앞 다퉈 고다이버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찰스 다윈의 초상화를 그렸던 영국의 존 콜리에와 에드먼드 레이턴, 프랑스의 쥘 조제프 르페브르,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고다이버를 그렸다. 영국의 팝 그룹 퀸의 ‘Don't Stop Me Now’와 피터 가브리엘의 ‘Modern Love’의 가사에도 그녀가 등장한다. 고다이버의 이름을 딴 초콜릿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가 되었고,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도 여러 편 나왔다.

고다이버가 이렇게 후세에 사랑받게 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씨 덕분이었겠지만, 여성의 벗은 몸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관음증도 한몫했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희생을 통해 백성을 구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멋진 사례이기도 하다. 고다이버의 벗은 몸보다 그것의 의미가 더 크게 와 닿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고다이버 부인 이야기가 나온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같다. 담뱃값을 시작으로 수도세, 도로세 등 세금이 마구 치솟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치솟는 전셋값에 난민 신세가 되고 있다. 세금은 치솟고, 국민 사기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리도 고다이버처럼, 다 벗고 거리로 나서야 할까. 벗고 나서면, 해결이나 될까. 우리들 마음이, 벌거벗은 고다이버처럼, 몹시 춥다. 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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