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59번지에
- 허튼 소리


김명배(1932~ )

빗물이 길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그 길이 생각나지 않는다 몇 시쯤 됐을까 세상은 비에 젖은 낡은 신문지 아주 오래된 속보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은 하나면 되지 싶은데 그만하면 많은 길이지 싶은데 너를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생각나지 않는다 빗물이 길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눈을 감아도 생각나지 않는다 비가 내린다 산성동 산 59번지에 비가 내린다.
 

[시평]
우리네 삶이 어디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분명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 놓고 매일 매일을 그 방향에 따라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은 몇 되지를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내심 깊은 곳에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생각의 갈피가 늘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비에 젖은 낡은 신문지 아주 오래된 속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에 젖어 이내 찢어질지도 모르는, 그런가 하면 방향을 제때 잡지를 못해 놓쳐버려 이미 시간이 오래된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속보’와 같이, 우리는 잃어버린 방향 속에서 많은 것을 놓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하루 종일 가을비가 내렸다. 우수수 잎들이 지는 거리에 내리는 가을비. 그 빗속에서 잠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세상의 많은 사람 잠시 마음의 발길을 허둥거렸으리라. 마치 시인의 마음의 거처지인 ‘산성동 산 59번지’에 내리는 비 마냥, 그 비를 맞고 있듯이.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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