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에 대하여

허영자(1938~ )

 유리창을 닦으니
세상이 환하다

안경을 닦아 쓰니
세상이 환하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세상이 환하다

너와 나
선 자리를 바꿔보니
세상이 환하다.

[시평]
유리창을 닦고 내다보는 세상은 환하다. 안경을 닦고 바라다보는 세상 역시 환하다. 마음을 고쳐먹고 바라다본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 환하게 다가온다. 또한 너의 처지와 나의 처지를 서로 바꾸어 서서 바라다본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환하게 다가온다.
마음을 새롭게 바꿔 먹어본다는 것, 서로 처지를 바꿔서 생각을 해본다는 것,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길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옛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씀이 있다.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을 해본다는 말씀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을 해보고, 갑이 을의 처지가 되어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조금은 더 환해질 것 아니겠는가.
을의 목줄을 누르던 갑이 을의 처지가 되어 자신의 목줄이 그 누군가에 의하여 눌려진다는, 그래서 헐떡이는 삶을 조금이나마 느낀다면, 누르는 자신의 손 다시 돌아볼 것 아니겠는가. ‘너와 나 선 자리’ 때로는 바꾸어보는 것, 참으로 세상 환하게 밝히는 길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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