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 조짐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 핵 포기와 인권개선을 강력 촉구한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계기로 북한은 박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원색적인 대남 비방을 계속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조평통,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과 국방위가 나서서 잇달아 박 대통령에 대해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대대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문제 전문가 사이에서는 다양한 해법이 제기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단상은 대략 다음과 같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일방적인 퍼주기 정책’은 결과적으로 핵개발 시간을 북한에 벌어주고 만 것 아닌가. 현재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달리다 지금 막다른 골목에 당도한 것 아닌가. 남북관계 악화는 누구 좋은 일 시키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대북정책은 오로지 외길밖에 없는가. 북한 핵문제와 남북경협을 다루는 방법을 전면 재검토할 수는 없는가. 남북이 각자 갈 길로 너무 나간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이 저렇게 막말을 듣게 누가 만들었나….

필자는 이미 대북정책에 대해 수차례 의견을 밝힌 바 있지만 최근 남북관계를 보면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저절로 흔들게 된다. 원론적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찬성한다. 하지만 후속 액션플랜의 지혜롭지 못함과 무책임함에는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우선 북핵문제가 남북경협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갑갑한 현실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한다. 넓게 보아 활도 병기이며, 핵무기도 병기의 하나이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이라도 일방적으로 무장해제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핵과 남북통일이 연계돼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핵문제는 핵문제대로, 남북경협과 통일은 남북경협과 통일대로 각각 다뤄야 한다. 핵문제는 6자 회담과 국제사찰 등을 통해 풀어나가되 그게 안 된다면 우리도 핵무장을 선언해 국방력과 협상력을 강화하고 맞대응해야 한다. 핵문제와 별도로 남북화해와 협력,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 안 되는가. 그것이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의 기본정신 아닌가. 남북긴장 상황은 군사강국 미국으로서는 무기판매에 유리하고 중국 러시아로서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북한 경제의 중국, 러시아 의존도 증가를 주목해야 한다. 자료에 따르면 북·중 교역은 지난 4년간 244% 증가해 2013년에는 65억 달러를 넘어섰다. 북한 국민총소득의 45%이상이 북·중 간 공식 교역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북제재 탓에 대북교역업체들은 줄도산했고, 남북 교역은 줄어들었다. 북한의 무산 철광과 아오지의 무연탄, 단천의 마그네사이트·아연은 중국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북핵’과 명분을 외치고 있는 사이에 우리는 많이 잃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논리적 모순이다. 대외적으로 공식 선언하고 당당하게 액션을 취하면 안 될까. 공식 해제가 된 것도 아닌데, 5.24조치는 예외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 얼마 전 통일부 방북 승인에 따라 윤이상 평화재단 관계자 3명이 평양 행사에 참석하고 왔다. 5.24조치는 무력도발에 대응한 대북제재 조치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개성공단사업을 제외한 남북 교역과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북한 선박의 우리 측 수역 항해를 금지했다. 하지만 2011년에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겸 유니세프 친선대사와 7대 종단 대표를 비롯한 사회·종교 ·문화계 관계자,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등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어 지난해는 남한 선수단이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으며, 올 4월에는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일행이 북한을 다녀왔다. 대북신규투자 금지 방침에 따라 중단됐던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건축공사도 허용된 바 있다. 이처럼 정부의 묵시적 동의에 의한 ‘예외’가 이어지고 있으나 공식 교류·협력은 겉돌고 있다. 당정협의나 포럼, 기고문 등에서 정부의 북핵 최우선 해결 전략 수정 요구나 통일외교 정책의 문제점에 관한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장기적인 과제인 북핵문제에 남북관계 현안이 종속돼서는 안 되며 5.24조치도 해제하는 등 입장을 분명히 해야 옳다는 목소리가 많다. 박 대통령은 1972년 중국과 수교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반전 기회를 한 손에 쥐고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흡수통일론을 경계하는 북한과의 신뢰 형성이다. 아량 있는 맏형의 자세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호 믿음의 토대가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이뤄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말로만 통일이냐”며 민심이반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당국자들은 ‘신뢰 프로세스’라는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부터 고쳐야 한다. 남북 동질성 운운하는 마당에 북한이 거부감을 가지는 영어식 조어(造語)는 부적절하다. 대통령의 통일 외교정책을 보좌하는 당국자의 섬세한 배려, 여유, 지혜로운 마음씀씀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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