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묵묵히 수행에만 정진하는 영혼들에게 하늘의 신령스런 축복이 내려진 것이었을까. 한 스님은 올봄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은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떠 아름답게 수를 놓은 모습을 목격했다. 직지사 선원장을 지낸 이 스님이 도량 터를 닦고 선원(禪院) 건립을 마친 날이었다. 스님이 강원도 정선에 참선수행자들을 위한 선원을 개소했다는 말씀을 들은 지 오래. 시간에 쫓기더라도 산사에 한 번 들러 쉬어가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으니. 숙세(宿世)의 업이 깊어 허둥대며 생업전선에 바쁘다는 핑계로 필자는 마음이야 천리이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벼르던 끝에 광복절 연휴에 길을 나서며 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스님은 공교롭게도 며칠 전부터 서울의 선원에 가 계신다는 말씀을 들어야 했다. 대신 유서 깊은 기도처인 오대산 상원사와 사자암 적멸보궁에 들러 잠시 몸을 의탁하긴 했지만.

무언가에 이끌린 듯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서니 자연의 법칙은 어김없다. 은행나무들이 샛노란 색깔로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는 등 가을의 정취가 한층 무르익어가고 있다. 아직 산 아래까지 단풍이 곱게 들지는 않았지만 설악산이나 지리산 정상 근처에는 단풍이 불붙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척에도 삼각산(북한산의 옛 지명)이란 천하명산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하안거 동안거 때도 아닌데 그 때처럼 수행에 정진하시는 분들이 있는 걸까….’

5일 오후 4시, 삼각산 자락 우이동의 한 절. 발길 닿는 대로 사찰 경내를 돌아보고 있는데 ‘딱’ 하는 죽비 소리가 들렸다. 궁금해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원래 일반인은 선원 출입이 금지돼 있다. 스님을 찾아뵈려고 무심코 걸음을 옮기다 송구스럽게도 스님들이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선방에까지 발길이 닿은 것이었다. 선방 문이 활짝 열리며 스님들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쌍수합장. 두 시간 동안의 화두참선을 마친 스님들 가운데 한 스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필자에게 전화 주신 바로 그 스님이었다.

“여럿이 함께 수행정진하면 서로 힘이 됩니다. 혼자 수행할 때는 아무래도 의지가 약해지거나 나태함에 빠지기가 쉽죠.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를 펴고 싶고, 다리를 펴면 벽에 편히 기대고 싶고, 기대다 보면 잠을 청하기 쉬운 게 인지상정이니….”

작설차 한 잔을 건네며 하시는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연중 내내 결제일을 걸어놓고 수행하는 스님과 도반들은 하루에 네 번씩 선방에 모인다. 새벽 세시 십분 전에 일어나 두 시간 수행하고 아침 예불 드린 뒤 다시 오전 수행 두 시간, 점심 공양 후 오후 수행 2시간, 저녁 예불 드린 후 3시간 정진하는 프로그램을 매일 계속해오고 있는 것.

“좌선하는 시간만큼은 시비(是非)가 끊어지고 윤회와 업보가 멈춘 복된 순간이니까요.”

요즘은 용맹정진에 나선 재가신도도 많아 이 절에도 재가신도들을 위한 큰 선방이 따로 마련돼 있다. 법회가 열리는 날은 법문도 하고 재가수행자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일에도 큰 보람을 느낀다는 스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행은 물론, 포교의 원력을 세우고 바로 이 절을 건립한 정일 선사가 스님의 은사. 정일 선사는 어릴 때 고서점에서 구입한 한 권의 불서가 인연이 돼 선가에 입문했다. 그 책이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다. 뜻도 모르면서도 수십 번 되풀이해 읽고 출가하는 선사는 동산 전강 도광 스님 등에게 법을 물으며 제방선원에서 참선수행을 정진하다 확연대오했다. 선사가 남긴 법어.

“혼탁한 시대일수록 정법을 잘 수호하고 더욱 번성시켜야 합니다.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수행함으로써 순수한 절대성의 경지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부처님의 법등을 참으로 환하고 밝게 켜나가야 합니다. 온 세상을 밝히고 일체중생을 성불의 세계, 실로 밝은 이치의 세계, 실상의 세계, 생명과 대자유의 세계로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인천 용화사의 송담 큰스님이 ‘조계종 탈퇴’까지 거론하며 조계종에서 나오는 잡음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했다. 그만큼 사찰의 재물 추구와 타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조선 선조 때 진묵스님이 “앞으로 500년간은 명리(名利)를 밝히는 중밖에 없다”고 한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종교집단은 수행과 전법을 해야 하고 그 밑바탕에는 신심과 원력이 있어야 할 텐데. ‘종단 권력’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스님 한 명 한 명이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할 텐데. 이런 때에 참나의 불을 밝히고 침묵 속에 조용히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는 스님들이 있다는 것은 반갑기 그지없고 위로가 된다. 절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세상에 던지는 큰 영적인 힘을 생각해 보며 인도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말씀을 곱씹어본다.

“침묵의 힘은 강력합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로부터는 강력한 영적 파동이 방출되며 아무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가슴을 변화시킵니다. 스승은 이를테면 신(神)의 현현이며 이 같은 신비로운 침묵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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