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으로 촉발된 북핵위기를 종료시킨 북·미 제네바 합의가 21일로 2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제네바합의는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 채택 등으로 휴지조각처럼 돼 버렸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치킨게임’에 농락당했고, 핵개발 시간을 벌어주고 말았다. 1994년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정부의 외교적 책략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한 전 장관은 “한국은 현실적이면서도 가능한 실용적 북핵 로드맵을 짜야 한다”며 “압박과 제재만으로 북핵 동결이나 저지는 어렵고 협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귀 기울여야 할 얘기다.

한반도는 어떤 바람이 불고 있는가. 우리에게 다가온 변화의 바람은 위기 상황인가, 기회인가. 내년이 해방 70년에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이지만 한반도 주변 외교적 풍향이 복잡다단하다. 무엇보다도 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지혜로운 세일즈외교의 중요성은 크다. 남북경협도 이런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효율적이고 실리적인 정부의 대처가 필요한 것 같다. 최근 외교, 국방정책 당국자들이 국민들로부터 받는 시각이 별로 곱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대북정책이 왠지 중심이 없어 보여 불안불안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금부터 120년 전 갑오년을 돌이켜보자. 열강의 각축이 한반도를 괴롭혔고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역리학자들은 60년 주기설, 120년 주기설을 거론한다. 혹시라도 그 때의 역사적 사건과 비슷한 흐름은 없는지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지금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04조 원이라고 한다. 경기 회복을 위해 올인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 북핵문제 등으로 촉발된 오랜 남북대치국면은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와 남북경협을 위축시키고 있다. 바닥에서 경제를 일으킬 혜안이 필요한 때인데 남북 대치 상황에서 지금까지 그랬듯 북한은 늘 상수이자 변수이다. 그중에서도 북핵문제는 우리 외교와 경제의 탄력적인 발전가도에 발목을 잡는 큰 장애물이다. 여기에 ‘사드(thaad)’배치도 뜨거운 감자이다. '영원한 우방' 미국과의 공조는 필수불가결임이 물론이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 본토를 방어해주는 것이 주목적이고, 중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드(thaad)’는 세밀히 살펴봐야 하겠다.

유의해야 할 것은 중국이다.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쳐진 중국이 바로 옆에서 나날이 세계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치가 흔들리는 달러화더러 보라는 듯 위안화의 위상은 급상승하고 중국의 미국 채권 및 금 보유고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혈맹인 북중관계이지만 중국은 최근 북한 김정은 정권과 다소 소원한 관계로 보인다. 중국은 사드와 한중FTA체결 문제, 북핵문제 등을 놓고 ‘압박과 회유’를 한반도에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사드에 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북핵문제에 관해서는 ‘선(先)핵포기- 후(後)경협’ 입장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같은 정책의 경직성이 빚는 결과에 대해 손익계산을 꼼꼼히 따져보고 통일외교정책을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일외교정책이라도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해줬으면 한다. 끝 모를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에 말이다.

러시아도 북한의 나진·하산프로젝트에 관여하면서 시베리아철도 건설 등 철도 운송 등에서의 한러협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얼마 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면담한 후 러시아 관계자들과도 연쇄회담을 가졌다. 러시아가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고, 동시에 북한도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존도를 낮추고 러시아 한국 등으로 다변화하려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무언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최고위인사 3인이 서울을 다녀갔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안개속이다. 국가안보가 제1의 과제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와 비무장지대에서의 무력 충돌이 남북화해협력에 암초가 돼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결과 과반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대북전단 살포는 자제해야 한다.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제한될 수 있고, 위험한 집단행동이라면 경찰관직무집행법으로도 주민 안전과 생명 보호를 위해 제지해야 한다. 이웃을 욕하는 메모를 써서 옆집에 자꾸 던져 넣는다면 어느 이웃이 좋아하랴. 남북 간 신뢰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국가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대북정책의 진정성과 거시적인 통일철학, 현명한 외교책략 등이 함께 요구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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