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말 철석같이 믿었다. 여야는 틈만 나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도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수없이 공언해 왔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달 19일, 8월 국회를 자정 직전에 소집공고를 내자 새누리당은 방탄국회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적도 있다. 곧이어 김무성 대표도 의원 연찬회에서 “앞으로 방탄국회는 없다”고 확언했다. 새누리당 혁신을 강조했던 김무성 대표의 말에 무게가 실린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당연히 가결될 것으로 봤다. 그게 약속이었고 또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상식이었다.

오만한 권력의 속살

그러나 새누리당과 김무성 대표의 약속은 모두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앞장서서 압도적으로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불과 열흘 전에 했던 다짐도,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의 일부 의원도 가세했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도 크게 할 말은 없는 셈이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어쩌면 이런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당 지도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새누리당은 체포동의안 처리에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야당에서 얼마든지 반대표를 비롯해 전략투표로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버렸다. 다시 말하면 부결이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도 싶다. 국회의원의 특권 지키기, 또는 제식구 감싸기 정서가 이심전심으로 공유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방탄국회는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국민여론이 있는데, 또 약속까지 했는데도 설마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고 했겠느냐고 물을 것이다. 단순한 원내 전략의 실패이거나 아니면 느슨하게 표결에 임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언제나 국민여론에 민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요즘 잘 나가는 새누리당이 그렇게 여론에 민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지금은 큰 선거도 없다. 그렇다면 잠시 여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동료의원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여론보다, 대국민 약속보다 그들만의 특권을 챙긴 것이다. 딱 두 눈 감고 민심을 등지고 동료를 구한 것이다. 권력의 오만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다. 선거 때면 온갖 감언이설로 말잔치를 벌이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다시 그들만의 특권잔치를 벌이는 꼴이다. 김무성 대표의 새누리당도 다시 구태로 되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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