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논란으로 뜨겁다. 여야가 ‘방탄국회’라는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고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현역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데 따른 것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이 현행범이 아닌 경우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고, 회기 전 체포 또는 구금된 경우 국회의 요구로 석방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1603년 영국 의회에서 가장 먼저 법제화된 이 권리는 국회의원의 신체의 자유를 확보해 대의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우리나라에선 권위주의 시절 소신 있는 국회의원들이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피할 수 있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불체포특권의 원래 의미는 퇴색하기 시작했다. 비리 혐의가 있는 의원들이 사법부의 수사망을 따돌리는 데 이용해온 게 사실이다. 정권의 탄압으로 보기 어려운 비리 혐의 수사와 관련해서도 체포동의안이 줄줄이 부결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2년 ‘저축은행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이 일로 당시 같은 당 이한구 원내대표와 진영 정책위의장은 동반사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철도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은 19대 국회 들어 두 번째다. 여야 국회의원 223명이 표결에 참여했지만, 찬성표는 73표에 불과했다고 하니 ‘동료의원 감싸기’에 여야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방탄국회라는 비난을 그렇게 듣고도 잘못을 반복한 것은 기가 찰 노릇이다. 선거 전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싹 바꾸겠다며 읍소하더니 이젠 국민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런 식이라면 불체포특권은 아예 없애야 한다. 비리 혐의에 대한 사법부의 정당한 공권력 집행까지도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막는 일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세월호 특별법이나 민생·경제 법안 어느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정치권이 동료 의원 구하기에 불체포특권을 악용하는 것은 도의적, 정치적 차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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