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이근배(1940~  )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사상(思想)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思想家)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平生)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幼年)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그 여리운 풀은

[시평]
냉이는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그 ‘어름’에 돋아난다. 그래서 아직은 겨울 기운이 다 하지 않은, 또 봄도 성큼 다가오지 않은 겨울과 봄의 그 어름에 돋아나 피는 꽃. 그래서 냉이는 여리고 여리지만, 겨울 기운의 쌉쌀함과 봄기운의 알싸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
사상가의 아내는 고달프다. ‘사상’을 위해 밖으로만 떠돌고, 집안은 나 몰라라 함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큰일을 위해 나도는 사람을 아녀자가 어찌 하리오. 그래서 어머니는 밭도 매야 하고 남자가 흘려야 할 땀도 흘려야 하고. 그 어머니의 흘린 땀이 자라서 된 꽃. 겨울과 봄 그 어름에 피어나는 꽃.
어린 시절의 아련한 아픔과 그리움이 담겨 있는 꽃.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한 내가 자란 마을에, 그리움과 함께 피는 꽃. 그래서 냉이꽃을 보면, 사상을 위하여 떠돌던 아버지, 그 뒷바라지에 그만 늙어버리신 어머니. 그 ‘어름’에서 피어난 자신을 보는 듯하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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