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한국이 그랬다. 한국의 베스트11이 상대를 얕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다음 날 언론이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 알제리를 제물로 16강 진출 교두보 마련이라고 대문짝만하게 기사화했을 것이다. 알제리 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 H조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후반 소극적인 수비 전술을 쓰다 역전패했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스피드와 개인기가 만만찮았다. 한국팀은 러시아전에 집중하느라 알제리-벨기에전 실시간 중계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홍명보호()는 안이했고 알제리를 몰랐다.

반면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이끄는 알제리 축구대표팀은 경기에 앞서 홍명보호를 치밀하게 연구했다. 한국의 최종수비가 약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롱패스로 최종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전략을 수립한다. 주저없이 메스를 들고 수술에 나선다. 벨기에와의 1차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았던 5명을 깜짝 교체한다. 이 점부터 홍명보호와 대조적이다. 한국은 앞서 튀니지 및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01, 04로 패퇴했다. 하지만 큰 반성 없이 대회에 임했다. 무기력했던 박주영은 그대로 스트라이커로 출장했지만 슈팅 한 번 날리지 못했다.

, 사람, 시스템 모두 문제였다.”

필자가 4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이 난을 통해 수차례 지적한 말이었다. 그러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국사회의 수많은 병리현상이 적나라하게 해부됐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과거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별로 바뀐 게 없다. 철밥통 공무원 사회는 그대로다. ‘관피아 방지법입법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전관예우에 관한 핵심조항 등은 삭제됐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과연 국가대개조자체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2기 내각 인사가 단행됐지만 참신하지 못했다. 논란 끝에 문창극 총리 후보는 사퇴했다. 나머지 장관 후보자 중 상당수도 청문회 통과가 기대난이거나 자질 미달이다. 청와대가 아닌 밀실에서 만든 노란 봉투로 인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음을 아는지, ‘세월호이후 위정자들이 과연 정신 바짝 차렸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80년대 이전에 군복무를 한 사람은 안다. 동부전선 GOP 총기 난사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음을. 단 한 번이라도 그 같은 유혹에 시달려보지 않은 채 군복무를 편안히 마친 이가 몇 안 됨을. 필자가 잠시 돌이켜 본 군대 생활. 훈련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게 내무생활이었다. 필자의 부대는 초급간부로 복무하는 물상병’ ‘물병장등 하사관 라인과 일병 상병 병장 등 병()라인 간의 알력이 심했다. 야간 경계근무 2시간을 고려하면 취침점호 후엔 훈련에 지친 고단한 몸을 쉬게 해줘야 할 텐데, 밤마다 집합이었다. 하루는 하사관 라인에서, 하루는 병()라인에서. 함박눈이 쏟아지는 추위 속에서도, 뙤약볕이 내려쬐는 폭염 속에서도 집합이었다. 이 때 행해지는 기합은 얼차려정도가 아니라 가혹한 구타였다. 몽둥이를 든 고참들의 가혹행위는 이틀이 멀다하고 행해졌다. 그러다보니 잠을 몇 시간 잘 수 없어 늘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느 날엔 곯아떨어진 새벽에 고참 병사 하나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평소 내성적인 성품이었던 그 병장은 XX, 다 죽인다고 외치며 뛰어 들어와 내무반을 왔다 갔다 했다. 그의 손에는 실탄이 장전된 소총과 수류탄이 들려 있었다. 곤히 잠들었다가 소란에 잠이 깬 부대원들은 담요를 덮어쓴 채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내무반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혹시라도 그가 방아쇠를 무차별로 당겨버리면, 만에 하나 묻지마 살인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지금도 그날, 그 숨 죽였던 밤을 생각하면 소름끼친다. 우리의 전근대적인 병영문화가 얼마나 개선됐는가. 소중한 인명을 살상한 임모 병장의 행위는 눈 감아줄 수 없지만 동시에 사건 발생경위도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 군 관심병사 관리의 사각지대를 찾아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보완해줘야 한다.

홍명보호도 배, 사람, 시스템 모두 문제였다. 튀니지, 가나전 이후엔 인맥축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선장 교체를 과감히 검토했어야 했다. K리그 선수들은 외면하고 해외파(손흥민 선수 등은 제외)에 무작정 의존한 선수 선발은 어리석었다. 개인기가 모자라면 히딩크 감독처럼 체력 강화훈련에 승패를 걸었어야 했는데 실패했다. 상대에 따라 수비 포맷을 복수화했어야. 유럽팀은 포백을 쓰더라도 알제리팀 같은 경우는 순간동작과 대인마크능력이 좋은 수비수 1명을 센터백으로 쓰는 변형된 수비도 검토했어야. 홍정호 김영권 같은 선수는 스피드가 느려 알제리전에서 제외했어야. 수비선수의 대인마크 능력이 모자라면 커버플레이로 대처했어야. 다시, ‘~한민국!’이다. 하지만 알제리전 직후 손흥민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 가슴을 친다. “초반부터, 그렇게 후반전 시작할 때처럼 정신 바짝 차리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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