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월드컵 알제리전이 열리던 날 새벽을 하얗게 지샜다. 선잠으로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 눈이 떠진 후 곧바로 TV를 켰다. 방송은 알제리전 1시간여를 앞두고 예고 프로그램으로 요란했다. 러시아와의 1차전 선전의 영향으로 인해 알제리전 승리를 기원하는 여러 멘트들이 쏟아졌다. “한국이 알제리를 이기고 16강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멤버들이 좋은 경기를 펼치기를 기대한다등의 희망 섞인 말들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희망은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경기 뚜껑이 열리면서 패배의 전조가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알제리 선수들의 볼을 다루는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볼이 발에 착 달라붙은 듯 짧은 패스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알제리 선수들의 플레이를 우리 선수들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시작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기가 좋은 알제리 공격수들은 홍정호 김영권 등 한국 수비수들을 초반부터 농락하기 시작했다. 칼날 같은 알제리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한 골, 두 골, 세 골. 한국 골키퍼 정성룡은 정신이 없어보였다. 전반전은 완전히 실망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한국 축구가 이처럼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본 축구 경기 중에 가장 졸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경기를 지켜볼 수가 없어서 서재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고 무장 탈영병 속보 등 일반 뉴스를 검색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갑자기 아파트 창문 밖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흥민이 후반 초반 한 골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내 노트북 뉴스창에 한국 추격골 성공이라는 자막이 뜨면서 1-3의 스코어가 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실의 TV 앞으로 달려나와 경기를 다시 시청했다.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전반전과 많이 달라보였다. 후반 교체 투입된 김신욱과 이근호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한국 선수들의 공격력이 매서워졌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해볼 만할 거야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후반 중반 알제리의 네 번째 골이 터지면서 이러한 기대도 수포로 돌아갔다. 한숨만 나왔다.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손흥민, 이근호, 구자철로 이어지는 골이 터졌다. 그래, 바로 저런 골이 나왔어야 하는데 하며 쓰린 속마음을 달랬다. 한국의 추가골을 기대하며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다가 이내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이번 알제리전에 대한 언론의 예상은 하나같이 빗나갔다. 알제리를 최약체로 지목하고, 한국의 1승 상대로 손쉽게 요리할 수 있다는 게 축구 전문가와 언론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부 끝머리에 위치한 알제리는 한국 축구가 결코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트 사커지네디 지단의 할아버지 국가인 알제리는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축구를 국기로 여길 정도로 아프리카의 축구 강호였다. 유럽처럼 부자나라는 아니지만 축구에 관해서만큼은 유럽팀 수준의 경기력을 보유했다. 알제리는 피파랭킹 22위로 한국축구 랭킹(57)보다 월등히 높았다.

알제리전에서 완패를 했던 것은 사실 한국 축구를 실력 이상으로 높이 평가했던 데 반해 알제리는 실력 이하로 저평가했던 자만과 오만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론들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고, 한국 축구의 승리만을 부추기며 뜬구름 잡는 기사를 내보냈으며, 축구 전문가들도 승리를 기원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 축구의 잘난 점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팀과 선수들이 겨루는 월드컵은 그렇게 쉽게 범접하기에는 너무나 벽이 높고 두텁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알제리전을 통해 월드컵 본선에 오른 팀은 하나도 만만히 볼 상대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을 법하다. 자력으로 16강 본선에 오르기가 힘들어진 만큼 한국 축구는 남은 예선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승리에 연연하기보다는 알제리전 후반에 보여준 강인함과 투지로 후회 없는 일전을 치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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