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월수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박춘태 교수

 

19세기 제국주의가 출현한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영어,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는 세계어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한 동인은 이들 언어의 종주국이 피지배국가에서 수행한 제국주의적 언어정책에 기인했다. 다시 말하면 식민지배에 유리하도록 피지배국가에 강압적으로 적용한 언어정책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가능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중국, 일본,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은 문화외교를 통해 자국어를 국제어 또는 세계어로서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 문화외교의 일환으로 이뤄진 한국어 국외 전파는 199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국가 차원의 한국어 보급 기관으로 국제교류재단, 한국국제협력단 등이 창설됐다.

창설의 시대적 배경으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짐에 따라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언어와 문화를 통한 국부 창출 거버넌스 구축을 하게 됐다. 그 이전에 외국 학자에 의해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거론된 적이 있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전략가인 허먼 칸(Herman Kahn) 박사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 향후 한국을 10대 강대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외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전파는 한국 경제는 물론 정치, 외교 등과 연계하는 고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국민, 재외동포를 결속시키는 동시에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어 국외 전파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보급 기관의 수, 학습자의 수 등 양적 성장에 비교적 큰 비중을 뒀다. 그러다 보니 현지 사정과 학습자의 트렌드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성장통이 있었다. 한국어가 필요한 지역에 거시적이고 구체적인 사전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 서부내륙 지역인 사천성, 충칭, 산서성엔 10여 년 전부터 중국 정부 주도하에 대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천성 성소재지인 성도에는 현대자동차공장, 롯데백화점, 한국관광공사 등이, 산서성 서안에는 약 7조 8000억 원을 투자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활발한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이 지역에 한국어 전공 인재가 많이 필요하나 고등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10여 개 정도이다.

근자에 들어 한국어 학습자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매료, 취미에서 벗어나 한국어, 한국 문화를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 이를테면 좋은 대우, 취업, 승진 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어 홍보에 대한 노력은 그동안 한글의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면이 없지 않았다. 아직도 일부 한국어 교재와 홍보영상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외국인 학습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감안해야 한다.

학습자의 수준과 학습 태도에 따라 한국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한글의 우수성 홍보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홍보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한국어가 국제어 또는 세계어로 뻗어 가려면 실제로 비중 있게 다뤄야 할 부분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중국인은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고 중국문화가 세계 문명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의식이 지배적이다. 상대국 국민의 의식,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향성의 한국어, 한국 문화 전파는 반정서가 형성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언어·문화의 전파 역량은 현지 사정과 학습자 트렌드를 얼마나 잘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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