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가 모조리

윤효(1956~  )

씨앗을 뿌려 보면
씨앗이 왜 사람인지
왜 하늘인지 알게 된다고
바짓가랑이 적셔 본 일 없으면서도
잘도 지껄여 왔구나.
새봄에 뿌려둔 꽃씨가 모조리
회초리로 자란다 해도
나는 할 말 없으리.

[시평]
씨를 뿌려보고 또 거두어 본 자만이 진정 씨앗이 지닌 그 위대함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작고 하찮은 그 씨앗이 어떻게 그 소담스러운 꽃들을 피우고, 그 풍성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는지. 씨앗을 뿌려보고 김도 매보고 밭둑도 다독여 본 사람만이 그 씨앗의 위대함을 진실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해보지 않고도 실은 안다. 씨앗이 왜 사람인지, 왜 하늘인지. 왜 그렇게 대단한지. 그래서 해보지 않은 것도 해본 사람만큼 알 수도 있고, 그래서 또 그렇게 말들을 하며 살아감이 일반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며, ‘아, 이것이 진정 내가 알고 있는 것인가’라고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노동이 없는 빈 지식을 진정한 앎인 양, 떠들고 산 자신을.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바짓가랑이 적셔 본 일 없으면서도 잘도 지껄여 왔구나’라고. ‘새봄에 뿌려둔 꽃씨가 모조리 회초리로 자란다 해도, 나는 할 말 없으리’라고 스스로의 삶을 자책해 본다. 자책 없는 삶, 그 삶의 허구를 일깨우고 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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