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에서 비리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마치 봇물 터지듯이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스포츠비리 근절을 위해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관련 비리에 대한 접수를 시작한 뒤 스포츠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는 스포츠 승부조작, 파벌 및 편파판정, 선수()폭력, 체육계 학교 입시비리, 체육단체 사유화 등 스포츠 공정성을 훼손하는 사례를 신고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직접 제보를 통하거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비리문제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농구 심판과 여자컬링 대표선수들의 비리폭로는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일단 드러난 내용으로 보면 스포츠비리의 심각성이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대한농구협회 전임 심판 11명 중 8명은 경기 판정에 협회 인사들의 부당한 외압 행위가 있었다고 양심선언을 하며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했다. 협회 관계자들은 그 내용의 일부는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농구협회는 심판문제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도 금명간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사상 첫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과 지난주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기록한 여자컬링 대표선수 4명은 지난주 귀국한 뒤 대표팀 코치로부터 욕설과 성희롱을 당했다며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선수들이 집단 사표를 제출한 뒤 코치도 책임을 진다며 사표를 냈다. 현재 선수와 코치 간의 주장이 달라 앞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도 뜨거운 공방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일련의 비리폭로는 새 정부 출범 후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바람이 체육계에 불어 닥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체육계에 대대적인 감사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동안 감춰졌던 체육계 비리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여론의 비난과 함께 사법적인 처벌까지 받게 됐다.

스포츠는 사회를 반영하고 강화하며 저항하는 사회적, 문화적 기제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 스포츠가 전반적으로 비리에 노출된 것은 그동안 압축성장 속에 가려진 부분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 중심의 경직된 조직체계와 개인의 자유마저 제한하는 극도의 조직문화, 학연, 지연, 혈연 중심의 폐쇄적 환경, 황금만능주의의 사고방식 등이 스포츠에 만연해 있었다. 스포츠라고 안전지역은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 주도의 엘리트 스포츠 정책으로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했으나 그 이면에서는 선수들의 인권침해와 폭력, 심판 부정행위와 승부조작 등이 심심치 않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형적으로 스포츠의 공정성, 투명성, 합리성을 내세워도 스포츠 조직 문화 전반적으로 스포츠 정신과 가치가 자리를 잡지 못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조직문화는 개인과 체계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데 체계가 경직되고 비합리적으로 운영되면 개인의 생동력이 제어되며 조직의 혁신 가능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버마스의 주장대로라면 한국 스포츠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드러난 일련의 스포츠 비리는 한국스포츠의 전근대성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스포츠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과 같은 스포츠 비리의 경험을 거쳐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도 스포츠 청정지역으로서 귀감이 되고 있다. 한국 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4대악을 척결하고 선진국형으로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정부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수, 지도자, 팬들이 건전한 스포츠 풍토 조성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자성의 움직임이 따를 때 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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