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의 독립운동가로 김도현 선생이 선정됐다. (사진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독립운동가 김도현 선생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선생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의병을 일으키는 등 일제의 탄압에 저항했다.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도현(1852. 7. 14~1914. 12. 23) 선생을 201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연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김도현 선생도 고향인 경북 영양 지역에서 창의를 준비했다. 1896년 2월 청량산에서 창의한 선생은 3월 18일 예안의 선성의진과 합세해 중군장으로 태봉전투에 참여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선생은 강릉 의진에 합류해 활동했고, 6월 10일경 영양으로 회군했다. 선생은 집 뒤쪽 검각산에 성을 쌓고 주둔하면서 1896년 10월 15일까지 경북 일대에서 유격활동을 펼쳤다. 이는 을미의병 가운데 가장 최장기간에 걸친 항전이었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되자 서울로 올라가 상소를 올리는 한편 각국 공관에 포고문을 보내 역적의 처단과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했다. 선생은 상소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의병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대구 감옥에 수감됐다.

1906년 가을 광무 황제의 밀칙을 받은 선생은 또 다시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했으나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선생은 1909년 영흥학교를 설립해 교육 활동에도 이바지했다.

1910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선생은 자결을 하고자 했으나 스승인 이만도가 부친이 생존해 있음을 이유로 만류해 잠시 미룬다. 선생은 1914년 부친이 사망하자 12월 23일 절명시를 남기고 바다에 걸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으로 순국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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