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 세부 모습(왼쪽)과 가마 출토 자기류(오른쪽 위), 문매병편과 명문(名文) 자기류(아래). (사진제공: 서울시)

고려 말~조선 초 혼란기에 서울 도자기 수급체계 보여줘
왜구 침탈로 전라도 청자 생산체계 전국으로 확산된 흔적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조선시대 도자기 생산지로 밝혀진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가 서울시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정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2011. 5~11월)를 통해 조선 도자기 생산지 중의 하나로 확인된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를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서울지역 내 발굴된 수많은 조선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도자기들의 생산지가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고려 말~조선 초기 서울의 도자기 수급체계를 보여준다.

고려 말기에서부터 조선 초기는 도자사의 측면으로 볼 때 상감청자에서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또 정치적으로는 왕조가 바뀌는 혼란기였다.

이러한 혼란기에 형성된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왜구의 침탈 등의 이유로 강진을 비롯한 전라도에 위치하던 청자 생산체계가 해체돼 전국으로 확산된 이후 서울 인근에 자리 잡은 요업(窯業)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 지금까지 조선 왕실 공급용 자기가 제작된 가마터는 주로 전라도 및 경상도 지역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수유동 가마터에서 출토된 명문(名文)자기와 용문매병편 등의 발견으로 관요(官窯)가 설치되기 이전에 한성부 내에서 덕천고와 같은 왕실 공급용의 담당 창고나 의례와 관련된 자기의 제작이 이뤄졌음이 밝혀지게 됐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서울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 전경(사진제공: 서울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수유동 가마터가 조선 초기 한양을 소비지로 하는 북한산 일대 가마의 전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도자양식사적으로 상감청자에서 분청사기로 이행하는 도자생산의 변화양상을 밝혀줄 것”이라며 “경제사적으로 조선시대 관요 성립 이전 서울지역 도자의 수급체계 추적의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유적이므로,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할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지난 11월 15일 의결했다.

서울시는 2011년 발굴조사돼 구조와 규모, 성격이 밝혀진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에 관한 서울시문화재(기념물) 지정 계획을 2013년 12월 26일(목) 자로 공고하고, 2014년 1월 26일까지 약 30일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2014년 2월 중 서울시 기념물로 최종 지정고시할 예정이다.

한편 현재 수유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발굴조사 이후 보존을 위해 흙을 덮어 유구를 보존하고 있어 노출돼 있지 않다.

앞으로 서울시는 문화재 지정 후에 등산로를 우회시켜 가마터를 더욱 보존하고 주변 일대를 정비하며 유도안내판 등을 설치해 문화재 현장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용어설명
요업(窯業) : 기와·벽돌·사기(沙器) 등을 만드는 업의 총칭(總稱)
관요(官窯) :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사기 제작을 위한 사기제조장(沙器製造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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