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복수’를 내려놓고 평화적인 관광을 목적으로 찾아온 85세의 외국 노인을 구금한 북한의 행태가 세인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0월 26일 구금한 미국인 참전용사 메릴 뉴먼 씨가 ‘범죄’를 저질렀다며 그 내용을 공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남한의 전우들과 북한의 옛 전우들을 연계시켜주려는 그의 인도주의를 그 무슨 간첩죄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북한은 30일 억류 중인 미국인 메릴 뉴먼 씨가 ‘구월산유격대’를 찾아 ‘남한전우회’와 연계시키려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사죄문 전문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도에서 “뉴먼 씨가 지난 10월 관광단 성원(단원)으로 조선(북한)에 들어와 관광목적과는 맞지 않게 조선의 존엄과 자주권을 침해하고 조선의 사회주의 제도를 비난하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시기 황해도 구월산 일대에서 정탐, 파괴행위를 벌리던 간첩, 테로분자들과 그 족속들을 찾아내 남조선의 반공화국모략단체인 ‘구월산유격군전우회’와 연계시키려는 범죄를 감행했다”고 밝혔다.

계속하여 통신은 “뉴먼 씨는 관광안내원에게 북한에 살고 있는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을 찾는 일을 도와줄 것을 요구했으며, ‘구월산유격군전우회’ 성원들의 집주소와 전자우편주소를 적은 문서를 양각도국제호텔에서 관광안내원에게 넘겨줬다”고 했다. 통신은 “해당 기관의 조사결과 그는 1953년 초부터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 산하 ‘유엔조선제6빨찌산연대’ 소속 ‘구월부대’ 고문관으로 반공화국정탐, 파괴활동을 직접 조직, 지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과정에 우리 인민군 군인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범죄자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으며, 그의 대조선적대행위는 여러 증거물들에 의해 입증돼 본인도 자기의 모든 죄과에 대해 인정하고 사죄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이와 함께 뉴먼 씨가 작성한 A4용지 4장으로 된 사죄문 전문과 사과문을 읽는 장면, 사과문에 서명하는 사진 등을 공개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뉴먼 씨는 지난 10월 26일 10일간의 북한 관광을 마치고 평양에서 베이징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체포돼 북한에 억류 중이었다. 북한이 뉴먼 씨의 사죄문을 발표한 것으로 미뤄 85살로 고령인데다 심장질환을 앓고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석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것이 북한이다. 북한의 잣대로 재면 인도주의도 적대주의가 되고 오랜 역사의 일도 현실로 되는 것이다. 그가 설사 6.25전쟁 시기 군인으로서 무슨 일을 했다고 하자.

그런데 오늘 그것이 범죄로 성립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6.25전쟁의 도발자이며 한민족 구성원 수백만 명을 죽게 만든 김일성은 ‘태양궁전’에서 끄집어내 부관참시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메릴 뉴먼 씨가 넘겨준 자료는 분명 친구 내지 혈육들을 찾고자 하는 이산가족들의 인도주의적 서신이었을 것이다. 이제 팔구십 고령으로 대부분 사망하거나 고령이 된 구월산 유격대원들이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역사에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옛 벗들과 혈육을 찾는 일이 과연 북한 체제에 어떤 위협이 된단 말인가.

북한은 분명 비핵화를 놓고 미국과 그 어떤 끈을 만들고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렇듯 이념적 포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요란한 경제개발구를 만들고 경제특구를 선언하는 모습은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 땅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뭔가를 찾기에 앞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확한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미 묻혀버린 역사적 사건마저 들춰내 갈등의 불씨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북한의 최후의 냉전분자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