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정부인사가 지체되고 있다. 하기야 인사가 만사이고, 朴정부 출범 초기에 철저하게 하지 못한 인사 검증으로 지명자들이 낙마하거나 임명 후에 자질론 시비를 빚어 한바탕 곤욕을 치렀으니 신중할 만도 하다. 현재 공석 중인 감사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등 정부조직법상의 인사는 그 지위나 영향력으로 봤을 때 섣불리 할 수도 없을 테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낙점해야 하는 공공기관 295곳 가운데 수장의 임기가 끝났거나 공석인 곳은 모두 24곳이고,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기관장도 22명에 이르고 있으니 인사에 바쁜 철이다.

그 가운데 공공기관의 인사와 관련하여 새누리당에서 대선 공신(功臣) 명단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 핵심 인사들이 대선 때 기여한 전직 국회의원이나 영입 인사의 명단을 청와대에 건넸다고 알려지는 가운데, 얼마 전에는 정우택 최고위원이 정부의 인사 지체를 지적하면서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선 과정에서 대선에 기여한 당 인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보은 인사론’을 들먹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고 정치문화가 합리적으로 수행된다는 미국에서 한때 엽관주의(獵官主義)제라는 인사제도가 성행한 시기가 있었다. 1829년 잭슨(Jackson) 대통령이 당선되고 1883년까지 4년간 이어졌는바, 대통령선거에서 집권한 정당이 정당 활동에 대한 공헌도와 충성심의 정도에 따라 공직을 임명했던 제도이다. 이 제도가 정당 이념의 철저한 실현과 관료주의화를 방지하는 데 기여했지만, 정치의 부패로 이어지고 행정 능률의 저하로 인해 비난을 받고 1883년 팬들톤법의 발효로 폐지되면서 그 대신 능력과 자격에 따른 실적주의로 대체됐다.

정부인사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짚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과 같은 정당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가 아니며, 우리 정당이 오히려 국민에게 불신 받고 있는 현실에서 정당정치의 소산인 “전리품은 승리자에 속한다”는 엽관주의제는 맞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는 매우 심각한 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이 부실 경영으로 160조 원 빚이 있고,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이 흥청망청 돈 잔치판을 벌이는 것은 낙하산 기관장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을 인사가 만사임을 천명해온 박근혜정부가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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