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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 찾아오는 간격이 차츰 짧아지고 있습니다. 처음 이 낮선 감각은 두렵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젠 통증의 사이사이에 찾아오는 평안함을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웃으며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허락되고 있음에 감사하고 그의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내 몸이 사랑스럽습니다. 긴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줄 알고 충분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충분히 고맙다 말하지 못하고 지내온 시간들을 가슴 아프게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故 장진영의 출연작이었던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위암말기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다가 세상을 떠난 희재(장진영 역)가 내레이션으로 했던 대사다. 고인의 사망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출연작인 ‘국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극중 위암말기로 죽음을 맞이한 민희재 역과 현실의 고 장진영의 죽음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희재는 위암판정을 받고도 뱃속의 아기를 위해 약도 먹지 않고 고통을 참아낸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만을 남겨두고 끝내 죽음을 맞게 되는데 고인 역시 극중 희재와 같이 사랑하는 남자와 가족만을 남겨두고 1년 만의 투병 끝에 숨을 거두게 됐다.

지난 1일 故 장진영의 사망소식은 많은 이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건강검진을 통해 위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판정을 받은 후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에만 전념해 왔다. 치료 중간에도 가수 김건모의 콘서트에 참석하고 가끔 공식석상에서 밝은 모습을 보이며 호전돼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픈 몸에도 긍정적인 삶의 의지와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던 고인이었기에 팬들은 하루빨리 기적 같은 완쾌를 기도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3년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며 영화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故 장진영은 밝고 매력적인 30대 노처녀로 변신했던 ‘싱글즈’와 술집여자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인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제24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장진영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연기하는 내 모습이 너무 못마땅해 영화배우를 계속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다음부터는 힘들지 않게 연기하는 좋은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는 마지막 수상소감을 남겼다.

늘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다며 스탭들과 감독에게 미안해하던 그의 모습, 뛰어난 연기를 하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던 그의 연기열정은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마지막 말만 남긴 채 한줌의 재가 되어 차갑게 식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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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죽음이 외롭지 않은 것은 영화처럼 살다간 그의 인생에 영화보다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故 장진영과 남편 김 씨는 지난해 1월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 연인으로 발전해 사랑을 키워갔다. 하지만 그해 9월 장진영이 위암말기 진단을 받고 김 씨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김 씨는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김 씨는 지난 6월 14일 故 장진영의 생일에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7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후 지난달 28일 김 씨는 성북구청에 혼인신고를 했고 둘은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부부가 된 지 4일 뒤인 지난 1일, 故 장진영은 힘겨운 암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임종의 순간까지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던 남편 김 씨는 장례가 치러지는 4일 내내 묵묵히 빈소를 지켰다. 고인과 함께 나눈 결혼반지 두개를 왼손에 나란히 끼고 조문객을 맞았던 김 씨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주위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지난 3일 김 씨의 부모인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부부가 며느리 장진영의 빈소를 방문했다. 결혼소식조차 몰랐다던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은 “처음에는 많이 놀라고 당황했지만 이런 선택을 한 아들이 장하다”며 이제는 고인이 된 며느리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후 故 장진영의 추모식이 4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서 남편인 김 씨와 유가족, 동료 배우들이 함께한 가운데 엄숙히 치러졌다. 오전 7시 45분 오열의 영결식이 끝난 후 발인식이 거행됐고 오전 9시 30분 화장장으로 결정됐던 경기도 성남시 성남영생사업소에 시신이 옮겨졌다. 고인의 시신은 오전 11시 30분 한줌의 재가 돼 유골함에 담겨졌다. 故 장진영의 유해는 이날 오후 1시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분당스카이캐슬추모공원 내 스카이캐슬 5층 천상관에 한국영화배우협회(이사장 이덕화)가 마련한 ‘영화배우 장진영관’에 안치돼 영면에 들었다.

추모식장에 들어서는 길에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였던 장진영의 마지막을 기리는 뜻으로 레드카펫을 깔았다. 죽는 순간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못했던 고인은 마지막 레드카펫을 밟으며 세상과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지난 6일에는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분당스카이캐슬추모공원에서 남편과 유족 및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삼우제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삼우제에서는 지난 7월 26일 비밀리에 올린 故 장진영의 결혼식 동영상이 공개됐다.

소속사 측은 “결혼식 영상 속 장진영은 순백 드레스를 입고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사람은 천상 부부였다”고 전했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앞으로도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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