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세력끼리는 강약의 구분이 있다. 강은 승리의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약은 힘이 부족하지만, 도저히 승기를 잡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조건이 주관적 노력을 능가할 수는 없다. 약자도 강자의 약점을 잡으면 이길 수 있다.

중국사상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武則天)은 존호부터 읽기가 난감하다. 일반적으로 ‘則’은 ‘칙’으로 읽지만, 則天은 하늘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므로 ‘측’으로 읽어야 한다. 그녀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감히 나서서 못했지만, ‘철의 여인’에게도 약점이 많았다. 정적들은 그것을 노렸다. 최대약점은 후계자 문제였다. 그녀는 4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세 아들을 잇달아 죽이고 넷째 단(旦)을 황제로 옹립한 후 비로소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황제가 된 측천은 황실의 후계자에게 자신의 성 무씨를 하사하기로 했다. 무씨는 조카 승(承)과 삼사(三思)를 후계자로 밀었지만 측천은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둘째 아들까지 죽였지만, 남은 두 아들에 대한 정리마저 끊을 수가 없었다. 권력의 화신에게도 모자의 정은 남아 있었다. 모자의 정이 무측천의 약점이었다. 이당왕조의 충성파는 이 점을 이용하여 이황가의 두 아들을 보호하면서 일정한 정치적 위치를 차지했다.

칭제한 측천은 5세조까지 황제로 추봉하고 자신의 일족을 모두 왕으로 봉했다. 당왕조는 부계승계를 관습으로 정했다. 아버지의 뒤를 아들이 잇는 것처럼, 어머니의 뒤도 아들이 이어야 한다. 측천의 다음 계승권도 이당의 자손에게 있었다. 무씨를 후계자를 삼는다면 다른 혈통이 뒤를 잇는 셈이다. 친자에 대한 연민과 무씨에 대한 미련이 측천의 난제였다. 무씨는 이러한 난제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했다. 이당왕조의 충성파도 이러한 무측천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관건은 누가 빨리 찬스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충성파의 중심인물 적인걸(狄仁杰)이 망설이는 그녀에게 건의했다.

“태종께서는 비바람과 창칼을 무릅쓰고 천하를 평정하여 자손에게 전했습니다. 폐하께서 그것을 다른 종족에게 물려주시려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닙니다. 고모와 조카 사이가 모자 사이보다 친하지는 않습니다. 아드님을 후계자로 세워 천추만세를 이어가게 하시고, 태묘(太廟)에 제사를 올리게 하시는 것이 업을 잇는 길입니다. 조카가 고모의 제사를 올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측천은 집안의 일이니 개입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자신에 대한 측천의 신임을 확신한 적인걸은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해몽을 통해 무씨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그녀의 생각을 약화시켰다. 충성파의 활동이 강화되자 추방되었던 현(顯)이 태자로 책립되었다. 충성파가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측천의 문제점을 해소하여 성과를 더욱 확대하면서 무씨세력을 달랬다. 현이 태자로 책립될 때 영원히 화목하게 지내며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는 맹서를 하라고 권했다. 측천이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자, 충성파의 정치적 안전망이 구축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들의 세력이 강화될 무렵 길욱(吉頊)과 무의종(武懿宗)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길욱은 체구가 크고 언변이 뛰어났으며, 무의종은 체구가 왜소하고 볼품이 없었다. 길욱은 무의종을 만나면 늘 목청을 돋우며 무시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씨의 장래를 불안해하던 측천은 길욱이 무씨를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측천의 약점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충성파들이 천신만고 끝에 쌓은 공이 일시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언변에 능한 길욱이 강등을 자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물과 흙이 합쳐지면 진흙이 됩니다. 그것이 싸우는 일입니까?”
측천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길욱은 진흙을 나누어 하나로 부처를 다른 하나로 천존을 만들면 다툴 일이 생기겠느냐고 물었다. 측천이 다툴 것이라고 대답하자 길욱은 이렇게 말했다.

“종실과 외척을 반으로 나누면 천하가 편안해집니다. 태자가 책립되고 외척은 왕이 되었으니 이는 싸움을 붙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누구도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측천의 마음은 잠시라도 편안해졌다. 측천이 늙어서 병이 들었을 때 충성파들은 정변을 일으켜 이당의 국호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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