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적의 주력을 무력화시키려면 우두머리부터 처치하여 전체 시스템을 와해시켜야 한다. 일단 적과 싸워서 이겼으면 승세를 타고 강공을 퍼부어야 한다. 작은 승리에 만족하여 대승을 거둘 기회를 잃는다면 아군의 손실을 줄일 수 있겠지만, 적의 주력을 격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승리마저 단숨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전쟁의 관건은 적의 우두머리를 잡는 것이다. 적의 우두머리를 잡지 못하면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 적의 우두머리를 잡으려면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쥘부채는 손잡이 부분에 있는 사북을 중심으로 모양새를 이루며 펼쳤다 오므릴 수 있다. 쥘부채를 분해하려면 사북을 고정시킨 못만 빼내면 된다. 내 친구 가운데 3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요리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멋지게 토마토를 자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토마토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세 번 칼질을 하더니 꽃받침을 도려냈다. 순식간에 여섯 조각의 토마토가 꽃잎처럼 그의 손바닥에 펼쳐졌다. 쥘부채의 사북과 같은 꽃받침을 도려냈기 때문이다. 군룡무수의 상태를 유발하기 위한 금적금왕은 사북이나 꽃받침에 해당하는 적의 요처를 일격에 격파하는 공격전술을 가리킨다.

‘금적금왕’은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전출새(前出塞)>에도 등장한다. “활을 당기려면 강궁을 당겨야 하고(挽弓當挽强),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用箭當用長). 상대를 쏘려면 말부터 쏘고(射人先射馬), 도적을 잡으려면 왕부터 잡아야 한다(擒賊先擒王).” 그는 외세의 침입을 막는 전쟁에서도 지나치게 잔인한 살육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살육이 수반되는 비참한 정치투쟁이지만 침략자를 죽이지 않고서 국가를 보전할 수는 없다. 두보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괴로워하며 이 시를 지었다. 그의 목적은 무절제한 군사행동을 삼가하라는 당현종에 대한 풍간(諷諫)이었다.

개원(開元) 18년인 AD 730년, 당과의 오랜 전쟁으로 지친 티베트인들은 화의를 요청했다. 현종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7년 후에 티베트인의 방어태세가 약화된 틈을 노려 광대한 서역을 당의 영토로 편입했다. 739년, 우호조약을 조건으로 티베트왕과 결혼했던 금성공주가 사망했다.

티베트는 즉시 그녀의 죽음을 알리고 새로운 강화조약을 체결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자신감이 생긴 현종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1년 후, 티베트인은 지금의 청해성(靑海省) 회서령(會西寧)의 서남쪽인 중진석보(重鎭石堡)를 점령했다. 현종은 가서한(哥舒翰)을 파견하여 중석보를 수복했다. 이 전투에서 당군도 1만의 군사를 잃었다.

두보는 위의 시에서 이 전투에 대한 유감의 뜻을 토로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적의 우두머리만 복종시켜서 자국의 영토를 보존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그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이 시에 담았다.

소설 <홍루몽(紅樓夢)>과 왕매(王邁)의 시 ‘별영복장경산(別永福張景山)’에서는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방법으로 원용했다. “문장에도 생기를 불어넣으려면(文亦有活法), 먼저 생기와 기백을 펼쳐야 한다(先使意氣張). 강적의 진지를 격파하려면(如破頸敵壘), 먼저 적의 왕부터 잡아야 하는 것처럼(須擒賊中王).”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서는 두보의 시를 전투에서의 제승방략을 이해하고 적을 제압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전쟁을 부정한 시인의 진심을 오히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였으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기발하다는 느낌도 든다.

‘금적금왕’은 적을 이기려면 가장 악독한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일반화하면 가장 중요한 관건을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선점하거나 가장 중요한 사람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군사적 계모나 지휘의 기술에서는, 작전의 초점을 먼저 적의 주력부대나 주요 지휘관을 섬멸하는 것에 맞추어 적의 사기나 투지가 흔들리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 확대하면 일을 기획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먼저 주요한 문제나 모순을 해결하고 난 후에, 나머지 사소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적의 주요 지휘관이 있는 곳은 견고한 방어진이 구축되어 있으므로 일정한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공격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적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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