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에서부터 장인준(82), 김기제(84), 이동진(82)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겹겹이 쌓인 전우 시체 머리 대신 배 밟고 전진했다”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6.25 전쟁에 참전했던 장인준 씨는 귀가 어둡다. 그를 만난 장소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큰 소리로 질문을 던져야 했다. 전쟁 당시 옆에서 펑펑 터진 포탄 소리에 고막이 상한 탓이다. 많은 참전 군인이 이런 상태라고 한다. 장 씨는 올해 82세다. 포성이 멈춘 뒤 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25의 기억은 지금도 끔찍하다. “아군 호에 전우의 시체가 이중 삼중으로 쌓였다. 얼굴과 가슴은 차마 밟을 수 없어서 배를 밟고 지나갔다. 마치 두부를 발로 으깨는 느낌이었다.” 서울시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부에서 만난 그는 60여 년 전의 참혹했던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전쟁 영화를 볼 때도 옛 생각이 난다. 장 씨는 “영화에서 보면 전우가 전사할 때 눈물을 흘리곤 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내가 죽느냐 사느냐 이 생각밖엔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 씨는 전쟁이 터지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충북 충주중학교(6년제) 2학년에 다닐 무렵이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측이 밀려 내려오던 1.4후퇴 상황. 총 한 번 만져본 적 없던 그의 손엔 총과 실탄이 주어졌다. 몇 번 쏴보고는 곧바로 전투 현장으로 투입됐다. 금화지구, 철원, 기마, 평강 등지에서 적과 싸웠다. ‘금성산 전투’에선 아군 1개 대대가 거의 전멸하는 위기도 맞았다. 이 전투에서 김 씨는 허벅지에 포탄 파편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적에 포위된 상태에서 전투를 계속했더니 피가 다 빠져 허벅지가 시퍼렇게 변했다”고 회상했다.

다른 참전 군인인 이동진(82) 씨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평양이 고향인 그는 공산당 비당원인 아버지를 따라 1.4후퇴 때 남하했다. 포병부대에 입대한 그는 제2차 서울 탈환 때 전투에 참가했다. 구름떼같이 몰려오는 중공군의 광경은 말 그대로 인해전술이었다. 이 씨는 “포를 정확하게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대충 방향을 맞춰 쏘면 명중이었다. 그만큼 상대가 워낙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적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목숨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

서울시지부장인 김기제(84) 씨도 중공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중공군이 변변한 무기 없이 낮에 공격하다가 남측의 막강한 화력에 병력 손실을 보니까 주로 밤에 공격했다”며 “중국 술인 ‘빼갈’을 한 잔씩 들이켜고는 피리나 꽹과리 소리를 내며 돌진해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어두운 밤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로 공포감이 대단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전쟁의 아픈 기억만큼이나 이들은 통일을 간절히 원한다. 이들은 “우리는 단일민족인데, 집안 식구가 분리돼 서로 싸우는 게 좋겠느냐”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경제 발전도 이루고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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