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

‘고객만족’ 대의 명분 앞에 멍들어 가는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위한 감정노동 방어권ㆍ휴식권 제도 필요

▲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한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종업원이 고기를 굽고 있는데 지나가던 손님이 갑자기 고기에 침을 뱉고 다짜고짜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다며 매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에도 그 종업원은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반복하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인 손님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이 종업원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결국 종업원은 고객만족이라는 대의 명분 앞에 손님에게 일방적인 사과를 해야 했고, 모욕감과 함께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대형마트 점원뿐만 아니라 은행원에서부터 AS센터 기사와 간호사, 화장품 판매원, 식당 종업원 등 많은 노동자들이 감정적 희생을 치르고 있다.

텔레마케터의 경우 성희롱을 당하고 욕설을 들어도 먼저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되는 게 고객만족시스템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실태이다.

화가 나도 참아야만 하고, 억울해도 하소연 할 곳 하나 없이 기업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은 이런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사회적 인식 개선을 통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태흥 소장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피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손님은 왕’이라는 것을 무기 삼아서 종업원들에게 인격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라고 안타까운 실태를 전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고객’이라는 이름 앞에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 사업장의 경우 8~10%정도가 고도의 우울증을 포함한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신체폭행, 욕설, 성희롱, 인격적 폭력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서비스업 종사자 29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비율이 8.1%, 중등 우울증이 11.9%, 경증 우울증이 28.7%, 정상이 51.3%로 나타났다.

김 소장은 “보건복지부 자료에서 일반 성인 우울증이 4%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위의 수치는 매우 심각한 상태”라며 “이렇게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 다른 감정노동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일이 반복 되는 등 사회적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김 소장은 국내 최초로 ‘감정노동관리사 자격증’을 만들었다.

그는 “감정노동관리사는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줄여 줄 수 있는 심리적 컨트롤 기법과 현장에서의 관리 기법 등을 통해 서비스업 현장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앞으로 미래 산업에 꼭 필요한 자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감정노동관리사 취득과정의 핵심은 ‘P.O.E(Point Of Emotioal labor) 프로그램’”이라며 “현장에서 받은 상처를 사후에 치료하는 심리치료나 힐링치료와 달리 문제가 생기는 바로 그 순간 심리적 충격을 줄여 줄 수 있는 심리적 컨트롤 방법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태흥 소장은 감정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감정노동 방어권’과 ‘감정노동 휴식권’을 주장하고 있다.

감정노동 방어권은 무자비한 손님이나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 고객과 마주쳤을 때 지속적으로 고객을 응대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일방적으로 사과하지 않을 권리이다.

그는 “막무가내인 고객이 나타났을 때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노동 휴식권은 감정노동의 강도가 강한 직종의 경우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정신적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김 소장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만이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피로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보다 우리 몸과 마음을 더 쉽게 망가뜨린다”며 “잠깐 누워서 음악을 들을 수 있거나, 편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흥 소장은 현재 사회 구석구석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감정노동자들을 위해 ‘행복한 감정노동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진짜 왕 노릇하려는 소비자로 인해 서비스업 종사자는 멍들고 있다. 나와 나의 가족과 내 친구는 언제나 소비자인 동시에 감정노동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존중 받고 나의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서는 감정노동자를 존중해야 하고 이로 인해 다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외치며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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