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청라언덕①] 100년 전 건물 그대로… 지난 역사가 녹아있네
[대구 청라언덕①] 100년 전 건물 그대로… 지난 역사가 녹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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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중구 동산동에 있는 스윗즈 선교사의 주택. 오른쪽으로 대구제일교회가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893년 대구 찾은 선교사들
고향 생각하며 지은 건물
고요·아늑한 휴식 취해

서양식 건물에 동양 기와
‘스윗즈 주택’ 동서양 공존
대구 역사 보여주는 증거물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가의 동무생각 中-

대구의 기독교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중심지인 청라언덕. 이 동산에는 건물 한 채, 나무 한 그루까지 그대로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190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청라언덕은 대구의 의료기술과 기독교가 태동한 곳으로 지난 역사가 녹아있다. 이때문에 보고 느끼고 체험하려는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여 ‘청라언덕’
대구 중구 동산동에 있는 ‘90계단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대구제일교회가 있고 왼쪽으로 청라언덕이 있다. 이 언덕은 1899년 제일교회를 설립한 아담스(James E. Adams) 선교사와 동산병원(현 동산의료원)을 설립한 존슨(Woodbridge O. Johnson) 선교사가 달성 서 씨로부터 매입한 작은 산이다. 달성토성(현 달성공원)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다 해서 동산(東山)이라 했는데 이곳에 병원과 교회뿐 아니라 당시 선교사들이 거주하는 주택들이 들어서게 됐다.

1893년경 선교사들은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하기 위해 대구로 들어왔다. 당시 대구 사람들은 파란 눈에 노란 머리, 하얀 피부의 키 큰 선교사들이 신기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 선교사들을 새로운 물건 보듯 만지고, 꼬집어도 보고,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라언덕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선교를 하기 위해 조선 땅을 밟은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러한 조선인들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 안락하고 평안한 보금자리를 찾아 언덕을 사들이게 됐고 한옥과 양옥의 건축방식이 오묘하게 석인 지금의 주택을 설립했다. 선교사들은 자연 그대로의 햇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아늑한 청라언덕에서 고단함을 잠시 잊고 휴식을 취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면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은 담쟁이덩굴로 장식된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푸른 담쟁이라는 뜻의 ‘청라(靑羅)’와 언덕이라는 말을 붙여 불렀다. 청라언덕은 ‘동무생각’의 노랫말 배경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7080세대들이 학창시절 불렀던 노래인 ‘동무생각’은 작곡가이자 합창지휘자인 박태준 선생이 짝사랑하던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노랫말에 나오는 푸른 담쟁이덩굴은 청라언덕을 말하며 백합화는 그가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을 뜻한다.

박태준 선생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의 기초를 배워 ‘가을밤’ ‘골목길’ 등을 작곡했는데 이곡들은 동요의 초창기 작품으로 높게 평가된다. 이후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대구 읍성돌 가져다 주춧돌로 사용한 스윗즈 주택
대구의 서쪽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선교사 스윗즈 주택(대구 유형 문화재 제24호)에는 마르타 스윗즈(Miss Martha Switzer) 선교사와 계성학교 4대 교장 핸더슨, 계명대학교 대학장 캠벨 등의 선교사들이 살았다.

이 건물은 다른 건물과 다르게 주춧돌을 출처를 눈여겨봐야 한다. 1910년 건물이 지어질 2년 전 대구읍성 철거 때 나온 읍성돌(城石)을 주춧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경북 관찰사인 친일파 박중양(1874~1955)이 고종의 반대에도 일본을 등에 업고 대구읍성을 철거했다. 이에 돌의 가치를 알아본 선교사들은 돌을 청라언덕으로 옮겨 사택을 짓는 데 사용했다. 돌의 일부는 계성학교 아담스관 등 근대건축물의 재료로 사용됐다. 스윗즈 주택은 한옥과 양옥의 설계 방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대구의 역사를 나타내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붉은 벽돌로 된 2층 건물을 본 여성들은 “아담하고 예쁘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식 2층 건물에 동양식 기와가 얹어져 있는 이색적인 건물이 누구나 한 번쯤 소장하고 싶은 사진을 찍게한다. 선교사의 주택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입구 담벼락에는 십자모양의 무늬가 곳곳에 있다.

이 건물은 1981년 8월에 동산의료재단에서 인수해 사택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기와를 함석(아연도금철판)으로 교체하고 내부의 마감재료 일부를 바꿨으나 본래의 건물형태나 구조는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현재 스위즈 주택은 선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층에는 개신교 교회사에 관한 사진 자료와 선교 유물이, 2층에는 성경에 연관된 세계적인 유물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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