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명인 피해로 대중에 각인
그러나 ‘범죄’라는 사회 합의 더뎌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스토킹 행위 용인 의미로 쓰여” 지적
1999년 이후 22년 만에 겨우 법 시행

①구애와 범죄 사이 스토킹정의와 역사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범죄에 대한 엄벌 요구가 커지고 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지난해 시행됐음에도 여러 가지 미흡으로 인해 피해자가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단 점에서 제도 보완에 대한 목소리도 거세다. 스토킹범죄와 처벌법에 대한 역사와 문제점, 법의 개선방안과 범죄예방을 위한 방법 등을 폭넓게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image
스토킹 합성 이미지. ⓒ천지일보 2022.09.29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스토킹(stalking). 사전적 의미로는 ‘남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행위’. 이 단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연예인들이 일부 팬들에 의해 당하는 사생활 침해를 알리면서다. 

최근에도 걸그룹 ‘트와이스’ 나연의 독일인 스토커가 한국에 입국해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는 2019년부터 나연을 스토킹해왔으며, 2020년 1월엔 나연과 같은 비행기에 탑승에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소속사 JYP는 그가 입국할 경우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연락이 오도록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스토킹은 일반적으로 연예인 등 유명인이 경험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국내에서 스토킹이 심각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1999년 배우 도지원이 스토킹 피해를 당하면서였다. 

스토킹이 범죄로 인식된 역사조차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7년 논문 ‘스토킹 범죄의 규제방안에 관한 연구(저자 원민아)’에 따르면 미국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스토킹으로 인한 유명 인사들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스토킹이 범죄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스토킹이 살인 등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비로소 일반 시민들도 스토킹이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늘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후반 스토킹이 사회문제시 될 것이란 가능성이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되며 스토킹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image
나연의 스토커가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 생일 축하 영상. (출처: 해당 유튜브)

2000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16세 이상 60세 미만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스토킹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남성의 10.5%, 여성의 20.9%가 스토킹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스토킹이라는 행위는 어떻게 분류하는 것일까.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월 22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여성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주거, 직장, 학교 등의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가 37.5%로 스토킹 행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접근 혹은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27.8%), ‘우편, 전화 또는 인터넷 등을 이용해 물건이나 영상, 문자 등을 보내는 행위’(14.8%) 등이 뒤따랐다.

응답에서 보듯 계속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스토킹범죄는 온라인 영역으로도 확장돼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를 ‘사이버스토킹’이라고 부른다. ‘가상공간에서의 피해자 보호 :사이버스토킹의 입법을 중심으로(정도희)’ 논문에 따르면 온라인상에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글을 게시하거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피해자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괴롭힌다. 

또 온라인상의 관계가 오프라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3월 서울 노원 세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신상이 공개된 김태현 역시 온라인을 통해 만난 큰딸을 수개월 동안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스토킹한 것으로 확인됐다. 

image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주환(31)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출감된 뒤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전주환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특가법) 보복살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앞서 언급한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서도 온라인·오프라인 둘 다에서 스토킹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4.8%에 달했다. 오프라인만은 76.5%, 온라인만은 8.7%였다. 

스토킹을 벌이는 가해자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2000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논문 ‘스토킹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박철현·이상용·진수명)’에 따르면 스토킹범죄 가해자의 상당수는 그 나름대로 호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그 호감이 거부됐을 때 범죄로 이어진다. 신당역 사건 가해자 전주환을 비롯해 김태현 역시 피해자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 2013년엔 자신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던 교사의 결혼소식을 듣고 교사를 살해한 남학생의 사례도 있었다. 

가해자는 일종의 ‘구애’로써 접근하지만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해자의 거절에도 가해자의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피해자는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게 스토킹범죄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사회 분위기가 스토킹을 구애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갈등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스토킹 행위에 대한 규제와 피해자화 방지전략에 대한 고찰(이건호)’이라는 논문에서는 이와 관련해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남성 중심주의로 인해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로잡기 어려웠다고 꼬집었다.

우리 속담에도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를 볼 때 상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특히 남녀관계 맥락에서 볼 때 스토킹 행위를 우리 사회에서 용인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게 논문의 설명이다.

image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7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2.09.17

이에 먼저 소개한 스토킹 범죄의 규제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은 스토킹 행위를 예측불가능성이 큰 범죄로 보고 스토킹 범죄의 판단은 피해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 정신적·신체적 불안 또는 공포 등을 느끼는 경우에는 스토킹의 피해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가해자의 호감과는 무관하게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스토킹에 대해 정의하고 규제·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스토킹 행위를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사회 인식을 반영하듯 국내에서 스토킹처벌법이 생기기까지는 1999년 처음 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에도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2013년부터는 경범죄처벌법을 통해 스토킹행위를 일부 처벌할 수 있었으나, 불과 범칙금 8만원이 처벌의 전부였다. 

현재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2020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뒤 이듬해인 2021년 3월 국회를 통과하고 10월 시행된 것이다.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는 등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지속·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을 스토킹범죄라고 규정했다.

1999년 처음 제안된 뒤 2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스토킹이 범죄로서 공인된 셈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