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가득찬 항아리 '만병(滿甁)'
두 연꽃에서 각 사람이 연기화생
도자기, 일종의 제기(祭器) 성격

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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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1. 중국쓰촨박물원소장 두 보살비상(강우방 촬영), 높이 162.2센티미터, 사암(砂巖)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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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 하반부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문득, 201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한 고대불교조각전에서 열심히 촬영했던 작품들 가운데 중국의 조각품이 떠올랐다. 바로 항아리에서 두 보살이 화생하는 광경이다. 파일을 찾아서 자세히 살펴보았다(도 1-1, 도 1-2). 전시실에서는 조명이 잘 되어 있어서 입체감이 살아나지만, 도록의 사진은 그림자를 지워서 조각품의 굴곡이 사라져 생명력이 없는 죽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중국의 양(梁)나라 보통(普通) 연간(520~526년)에 제작된 것이리라. 물론 모든 나라의 조각 전공자들은 만병을 모르므로 설명하지 못하고 항아리가 있다고만 쓰고 있다. 아마도 그 당시 필자 역시 몰랐으므로 남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6세기 중엽이니까 우리나라 삼국시대 전성기 때다. 그 작품이 중국 서쪽 끝 사천성(泗川省) 성도시(成都市) 만불사 터(萬佛寺址)에서 발견되었는데, 사천성이란 지방은 인도와 중국과의 가장 빠른 교통로의 중심 지역이었다. 그래서 인도의 불상이 들어오거나 인도 영향을 받은 불상들이 제작되어 일찍부터 주목받은 루트였다. 그래서 인도의 특징적인 도상들이 표현된 작품들이 많아서 아마도 이 작품에 표현된 항아리도 인도의 항아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이 가득 찬 항아리인 만병(滿甁)에서 여신이 탄생하고 있음을 다룬 적이 있으므로 직감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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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1. 락슈미의 만병=보주 화생, 인도 쿠샨시대 2세기, 마투라 발견, 높이 106센티미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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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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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기원후 1세기 산치 대탑 토라나에 조각된 략슈미상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인도 쿠샨왕조(AD 78~220) 전성기인 기원후 2세기에 만들어진, 마투라(인도 중부 윗부분)에서 발견된 ‘락슈미를 기둥에 새긴 상(도 2-1, 도 2-2)과 기원후 1세기 산치 대탑 토라나에 조각된 략슈미상(도 3) 두 상을 이미 제17회 연재에서 다루었지만 여기에 다시 소환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 

마투라의 락슈미는 신전의 기둥에 조각된 것이므로 기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인데 고대의 기둥은 그 상징성이 여신보다 크다는 뜻이다. 기둥은 물기둥임을 필자가 일찍이 밝힌 바 있다. 산치의 락슈미는 고대 인도의 힌두교 성전을 가리키는 『뿌라나』의 내용에 의거하여 산치 대탑에 조각한 것인데 코끼리는 역시 현실의 코끼리가 아니라 영수(靈獸)를 의미하여 코끼리도 무량한 생명수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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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3. 만병만 채색하여 강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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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4. 전체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9.23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인도 것처럼 환조(丸彫) 즉 사면 전체가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이 아니고, 부조상이지만 비교적 두드러져서 반부조(half relief)라 불러야 한다. 즉 신체의 측면을 절반 정도 나타낸 것이라는 말이다. 맨 밑에 큰 항아리가 놓여 있고 항아리로부터 각종 영기문들과 함께 연꽃모양과 연잎모양들이 가득 나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줄기는 매우 큰 연꽃으로 표현하고 씨방이 보일 듯 말 듯 표현되어 있어서 지나치기 쉬우나 이것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보주가 가득 찬 씨방이며 이 씨방(=보주)에서 각각 두 보살이 탄생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중앙 윗부분에 두 연꽃에서 각각 사람이 연화화생하는 모습이 너무 작아 지니치기 쉽다(도 1-3, 도 1-4).

다시 강조하거니와 항아리 안에는 바다와 같은 무량한 물, 즉 생명수(生命水)가 가득 차 있어서 만병(滿甁, 滿이란 漢字는 가득 차다는 뜻이다)이라 부른다. 그 만병 안의 생명수가 형상화된 것이 바로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그리고 보주다. 이 4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보주다. 보주에서 중국의 만병에서처럼, 영기문의 형태소(形態素)인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그리고 보주 등이 나오는 것이니, 이에 이르러 보주가 바로 만병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보주를 상징하는 영화(靈花)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그래서 필자가 제시하는 이론인 <영기화생론>이 보편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만병에서 두 보살이라는 최고의 존재가 직접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항아리로부터 먼저 4가지 형태소 즉 ‘만물 탄생의 근원인 4가지 조형적 기본 형태들’에서 두 보살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의 락슈미 여신도 만병에서 직접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병에 가득 찬 생명수가 연꽃과 연잎을 나무처럼 문양화한 모양이 나온 다음에 거기에서 락슈미 여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즉 락슈미가 영기화생하는 광경이다.

아, 이 글을 쓰면서 만병을 충분히 설명하며 곧바로 보주로 직진할 수 있게 되어 무한히 기쁘다. 원래 도자기는 선사시대부터 그런 의미를 띤 일종의 제기(祭器)의 성격을 띠어서 처음부터 영기 문양들이 표현되었던 것이며 그 전통은 역사시대 전체에서 이루어져 왔으니, 고려청자나 조선 청화백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간은 점차 영성(靈性)을 상실하여 가는 과정에서 도자기의 본래 상징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현실에서 기능적으로 쓰는 그릇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므로 인도나 중국의 항아리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둥근 보주로 표현하여 보살을 탄생시키면, 보주 모양이 불안하므로 밑부분에 굽을 만들어 안정감을 주게 하고, 보주의 구멍은 입을 만들어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었음을 깨달을 수 있어서 환희심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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