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는 명실공히 천하제일
조각․회화․도자기 등 모든 장르는
​​​​​​​궁극의 진리인 보주에서 만난다

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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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1) 청자상감 보주문 합.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높이 14.3센티, 반경 18.8센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20여 년 전에 아내와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을 처음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이또(伊藤) 관장은 일본에서 자주 일어나는 지진에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장치를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일본인만큼 우리나라 도자기를 사랑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분석해 보일 고려청자는 4년 전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서 열렸던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전에서 조사했던 작품이다. 그날은 유난히 피곤하여 한 바퀴 휘돌며 눈에 잡히는 작품들만 촬영해 두었었는데 요즘에야 그중의 한 작품이 매우 중요함을 밑그림 그리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고려청자의 비색이 살아나도록 조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렇게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본 적이 없다. 참으로 세계 으뜸이다. 경이적이어서 그 형태들과 비색이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색이나 형태만이 경이적이 아니라 흑백 두 가지로 상감한 문양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펴낸 도록 역시 최고 수준의 것이었다. 

그동안 등한시해온 문양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고려청자는 참으로 천하제일이 되었다. 그 신비의 베일이 1000년 만에 벗겨지고 있으니 나의 가슴은 글을 쓸 때마다 메는 것 같다. 

기억하건대 그 전날 나는 아침에 깨면서 통곡하고 흐느끼며 오랫동안 울었다. 평생 처음이었다. 동반자는 아직도 그날 아침 그토록 서럽게 운 까닭을 모를 것이다. 그 당시 2018년에는 나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꿈이 영글어가고 있음을 확신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제자가 없어서 울적한 때였다가 꿈을 꾸고는 통곡했었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곧 출간될 자서전에서 다룰 것이다. 그 이튿날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을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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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 청자상감 보주문 합 뚜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요즘 고려청자의 문양 가운데 ‘국화문’이란 용어가 얼마나 그른지 증명해 가고 있다. 거듭 강조하여 오고 있거니와 조형예술품들에는 현실에서 보는 사물은 일절 없다. 다행히 원하던 작품을 그 겨를에 촬영해 두었음을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도 1-1, 도 1-2). 촬영일은 2018년 11월 2일. 게다가 카메라를 높이 들고 뚜껑 윗부분도 촬영해 두었다. 만일 뚜껑을 촬영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자세히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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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둥근 원 안의 보주문을 채색분석한 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우선 둥근 원 안의 보주문을 채색분석했다(도 2-1). 지금 ‘분석’이란 말을 썼다. 그것도 채색분석이다. 문양은 채색분석하지 않으면 절대로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 원형 문양 주변에 처음 보는 ‘면으로 된 제1영기싹 영기문’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가. 보주문으로부터 주변에 역동적으로 발산하는 제1영기싹 영기문은 분명히 보주로부터 발산하고 있다(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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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2) 둥근 보주문에서 발산하는 영기문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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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3) 도 2-6에서 발산하는 두 영기문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그러고 나서 뚜껑의 문양 밑그림을 그려 보니 둥근 굽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면으로 된 제1영기싹 영기문 두 개가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도 2-3). 그 순간 나의 시선은 굽 중심에 있는 세 개의 모래받침으로 향하며 소스치게 놀랐다. 만일 그 세 개의 모래받침이 씨앗이며 그리고 둥근 전체가 ‘씨방=보주’라면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도 2-6). 

영기화생론에서는 민화에서 보다시피 매화도 보주로, 솔잎들도 보주에서 직선 영기문이 발산하는 모습이고, 대나무 잎도 중심의 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거늘 뚜껑 굽안의 세 개의 모래받침을 '씨앗=보주'로 인식하여 영화된 세계를 표현했다고 해서 무리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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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6) 같은 방향으로 내려 쏟아지는 뚜껑의 영기문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의문의 갈등과 확신 사이를 오가며 마침내 틀림없다는 부동의 확신이 들면 비로소 펜을 든다. 사활이 걸린 사투(死鬪)다. 절대적 진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그 씨방 주변에 역시 면으로 된 제1영기싹 영기문이 역동적으로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다. 실제로 연이어 있지는 않지만 연이어진 의도로 이루어진 제1영기싹 영기문이다(도 2-6).

재차 눈 비비고 확인하여 보니 이 뚜껑의 영기문에서 분명히 두 개의 제1영기싹이 뚜껑의 영기문 띠로부터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도 2-3). 같은 방향의 영기문들을 모두 채색해 보니 뚜껑의 씨방과 그를 둘러싼 영기문들로부터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지 않는가(도 2-4). 그리고 나머지 영기문들은 따로 분명히 각각 둥근 보주에서 발산하고 있으므로 쉽게 구별하기 위해 녹색으로 채색하였다(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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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4) 뚜껑의 녹색 영기문은 둥근 보주문에서 각각 발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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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5) 뚜껑의 '씨앗=보주'와 그 주변의 영기문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8.12

치열하게 채색분석하고 나니 장마 끝에 모처럼 보였던 여름 햇살이 은은히 지고 있었다. 보름 동안 작품들을 선정하여 두고 채색분석을 부지런히 끝내고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내용 전개의 방향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게 나아가기도 한다. 이른바 국화문이라는 잘못된 문양 용어는 작은 잔이나 작은 합이나 작은 병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들이 작다고 해서 지나치면 안 된다.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때가 없다. 매 순간 화두를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긴박한 인드라망의 관계를 지니며 살고 있다. 사고력은 생명력이다. 변하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다. 늘 직진한다. 그러나 글 쓰면서 되돌아본다. 연재란 무슨 주제이든 간에 자신이 직접 조사한 작품들을 충분히 확보해 놓아야 하고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은 부분을 어느 정도 성취해 놓아야 가능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50여 년 전, 1970년도에 강진 고려청자 요지를 발굴하지 않았다면 이 연재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고의 변화는 각고(刻苦)의 과정을 겪는다.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시각적 변화가 일어난다. 한번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마침내 궁극에 이르러 절대의 지혜인 보주의 경지에 이른다. 무엇이든지 모든 것은 결국 궁극의 것에서 만난다. 조각․건축․회화․도자기․금속기․복식 등 모든 장르는 궁극의 진리인 보주에서 만난다.

이른바 국화문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결국 보주문임을 확인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이룰 수 있다. 평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다가 어찌 갑자기 절대의 지혜에 이를 수 있겠는가. 도자기는 단지 그릇이 아니다. 고려인들이 왜 천하제일 고려청자를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였겠는가.

진리란 문학이나 철학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조형예술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그 이상으로 심혈을 기울여 절대적 진리를 역사적으로 추구해 왔다. 지금 그러한 역사적 사명을 처음으로 회복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 조형예술품에서 조형언어를 찾아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형언어가 없이 어찌 조형예술품에서 학문과 예술의 전반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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