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22.06.23.
[세종=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22.06.23.

정부, 연장근로단위 개편 발표

1주 12시간→4주 48시간 추진

 

“‘주52시간제’조차 편법 만연”

개편보다 규제·처벌 강화해야“

 

정부 ‘11시간 연속 휴식’ 등

‘과로방지대책’ 마련할 계획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지금도 주 52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회사입니다. 저녁시간을 포함해 주 4일은 밤 23시까지 근무해야 하거든요. 철야를 하더라도 해당 주에 52시간 초과를 하지 않으면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최근 현행 ‘주 단위’의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노동현장에선 이번 개편을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기존 ‘주52시간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면 ‘노동시간 장기화’로 이어지고 근로자 처우까지 덩달아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프로그램 개발자 A씨는 “일요일 16시간, 월요일 12시간, 화요일 5시간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니까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출퇴근 기록을 했으나 회사에서는 주52시간·수당 위반 은폐를 위해 출퇴근 기록을 없앴다”고 토로했다.

최근 정부는 현행 ‘주 단위’의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주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단위를 한달 48시간으로 늘림으로써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노사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강조해왔던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다.

반면 일각에선 이를 통해 일주일에 92시간 근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이번 개편을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주92시간제’는 이미 몇몇 사용자들이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법적으로 주52시간까지만 근무할 수 있지만 하루 16시간씩 주 90시간 근무를 하게 하면서 포괄임금제 계약을 이유로 연장·야간·휴일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박은하 노무사는 “악덕 사장이 오른손에 포괄임금제라는 칼을 들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가 사용자의 왼손에 ‘주92시간’이라는 도끼를 주려 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동시간 개편이 아니라 포괄임금제의 불법과 편법을 규제하고 처벌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수당을 비롯한 법정수당을 실제 노동시간에 상관없이 기본급에 포함해 지급하거나(정액급제), 별도로 정액의 수당으로 지급하는 임금방식(정액 수당제)을 말한다.

최근에 이직했다는 B씨도 “회사가 포괄연봉제를 하는 곳인데 제가 일하는 부서는 2주마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한다. 주 40시간, 연장근무 12시간을 더해 52시간을 맞춰 일하는 방식”이라며 “야간일 땐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야간근로수당이 발생하는데, 포괄연봉제기에 수당이 없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 박 노무사는 “실제 일터에서는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닌데도 포괄임금제가 매우 광범위하게 악용되고 있다”며 “포괄임금제가 시간 외 근로를 전제하고 있으니 노동자는 회사에서 지시하는 야근을 거부하기 어렵다. 근로시간보다 더 일하는 경우 추가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92시간 사실상 불가능”

현행 근로기준법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 노동정책인 주 52시간제로 법정근로시간 1주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법 개정을 거쳐 같은해 7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됐으며 내달이면 이 제도가 전면 시행된 지 1년을 맞는다.

이러한 52시간제의 유연화를 위해 노동부는 법정근로시간인 1주 40시간은 유지하되 연장근로시간만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경우 첫째 주에는 주 9시간, 둘째 주에는 주 15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된 월 단위 기준으로 적용해보면 최대 연장근로시간은 1년 12달 평균(4.345주)에 12시간을 곱한 52.1시간으로 계산된다. 이를 몰아서 쓰면 산술적으로 일주일에 92.1시간(40+52.1시간)까지 근무할 수도 있게 된다. 더군다나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스타트업계 의견”이라며 ‘일주일 120시간 근로’를 말해 빈축을 산 적이 있는 만큼 ‘노동시간 유연화’가 ‘노동시간 장기화’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 등에서 92시간 근무가 실제론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도 “근로시간 제도 개선은 주52시간제를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운영 방법을 현실에 맞게 보완하려는 것”이라며 “월간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주 92시간 근무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로 보고 ‘11시간 연속 휴식’ 등 과로방지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탄력 근로제 등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11시간 연속 휴식’은 하루 근무가 끝나고 다음날 근무가 시작하기 전까지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부여하는 제도다. 근로기준법은 이와 관련해 ‘천재지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불가피한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간 서면 합의가 있으면 이에 따른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속도 낸다

노동부에 따르면 발표한 이번 개편안은 최종 확정된 방안이 아니다. 다만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흐름을 제시한 만큼 기본적인 개편 틀은 유지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노동부는 향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내달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운영해 구체적인 입법·정책과제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92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00시간대보다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번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주52시간제 보완책인 탄력 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제’가 보완됐지만 절차와 요건이 까다로워 활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노동부는 실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자 휴식권 강화 등을 위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업무가 많을 때 초과근무를 저축해뒀다가 추후 휴가 등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주 52시간제 보완책인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 이내로 대폭 확대하고 스타트업·전문직에 대한 근로시간을 완화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규홍 복지부 차관, 이영 중기부 장관, 이정식 고용부 장관, 추경호 부총리, 원희룡 국토부 장관, 장영진 산업부 차관 (제공: 기획재정부) ⓒ천지일보 2022.6.19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규홍 복지부 차관, 이영 중기부 장관, 이정식 고용부 장관, 추경호 부총리, 원희룡 국토부 장관, 장영진 산업부 차관 (제공: 기획재정부) ⓒ천지일보 202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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