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포스코. ⓒ천지일보 2021.12.21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포스코. ⓒ천지일보 2021.12.21

20대 여직원, 직장 상사 4명 성폭력으로 ‘고소’

“포스코,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 오래돼”

“성폭력 사건, 조직문화 개선되지 않은 것 증명”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포스코의 주먹구구식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포스코의 조직문화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피고소인 조사에 앞서 동료 직원 4명으로부터 성폭행과 추행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포스코 여직원 A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은 성(性)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성적 가해행위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을 포괄한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해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고통을 야기한다.

성폭력 피해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성폭력 피해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 피해자 A씨 “회식 때 만지고 껴안고, 집 찾아와 성폭행”
앞서 MBC와 한국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포스코에서 여직원이 같은 부서 동료들로부터 3년 넘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직원 A씨는 50여명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유일한 여성으로 해당 부서에서 3년 넘게 일했다.

A씨는 “사무실에서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겪었고, 회식 때에는 상사가 허벅지를 만지는 등 추행을 당했다”며 “회사 내 감사부서에 신고했지만 가해 직원이 감봉 3개월 징계받자 따돌림을 받았고 또 다른 직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해당 부서는 회식이 잦았고 억지로 술을 마시도록 강요받은 것은 물론 추행도 겪었다고 A씨는 말했다. A씨는 “부서를 총괄하는 상사가 늘 옆자리에 앉아 술을 따르라고 했고 허벅지 안쪽까지 손을 넣어 만지기도 했다”며 “너무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지만 싫은 내색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압적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나면 반드시 노래방을 갔는데 끌어안거나 몸을 밀착시켜 추행했다”며 “회식에 빠지겠다고 하면 ‘인사 평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부서 선임 B씨를 지난해 12월 포스코 감사부서인 정도경영실에 성희롱 가해자로 신고했다. 회사가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하는 동안 동료들은 A씨의 피해 사실을 공유하며 입을 맞췄다고 한다. A씨는 “B씨가 감봉 3개월 징계받자 ‘별일 아닌 일로 가정을 파탄 냈다’고 손가락질했다”며 “따돌림이 너무 심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성희롱 피해 신고를 후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씨는 지난달 말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선임 C씨에게 폭행당하고 성폭행도 당했다. C씨 전화를 받은 뒤 주차 문제인 줄 알고 아래층에 내려간 A씨는 C씨의 집 도어락이 방전됐다는 사실에 도구를 챙기러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다가 따라 들어온 C씨에게 맞아 정신을 잃었다. C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A씨는 지난 7일 C씨를 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술자리에서 자신을 추행한 상사 2명과 성희롱을 일삼은 B씨도 고소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 등을 골자로 한 권고안을 최종 확정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적막감이 돌고 있다. 권고안에는 장관의 경찰지휘규칙을 제정하고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인사제청 및 징계 요구 등까지 가능하도록 한 내용도 담겼다. ⓒ천지일보 2022.6.22
경찰. ⓒ천지일보DB

A씨는 “허벅지를 만진 상사는 대내외적으로 활동이 왕성한 인물이라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할 수 없었다”며 “같은 건물에 사는 선임에게 맞고 성폭행을 당하고 난 뒤 용기를 내 경찰에 고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은 해당 사건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회식 자리 등에서 A씨가 추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동료 직원의 증언이 나온 상황이다. 동료 직원은 “회식 때 옆으로 오라하고 허벅지 등을 쓰다듬는 것을 봤다”며 “(상사가) 노래방에서 몸을 밀착해 심하게 비볐고, A씨가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보다 못해 지난 4월부터 부서장과 제철소장, 포스코 부회장에게 피해 여성의 고통과 관심 환기를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캡처)
(출처: MBC 뉴스데스크 캡처)

이와 관련해 포스코 측은 피해여성과 면담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며 해당 부서 리더의 보직을 해임하고 피고소인 4명에 대해선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엄중 문책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심한 압박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폐쇄적인 조직 문화의 개선을 요구했다. A씨는 “(포스코에) 이런 피해 여성들이 많다. 그런데 아무도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런 조직문화는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포스코 직원들 사이에서도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직장인 익명 소통 어플 ‘블라인드’에는 “드디어 터질 게 터졌네” “이게 말이 되냐” “진짜 썩어빠졌다” “성범죄가 벌어져도 회사에서 엄청 쉬쉬한다”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 처벌하자” 등 포스코 소속 직원들의 폭로와 진상규명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2019년 5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소책자. 해당 책자 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대응책’을 실시하는 등 포스코가 우수기업 사례로 소개돼 있다. (제공: 포스코) ⓒ천지일보DB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2019년 5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소책자. 해당 책자 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대응책’을 실시하는 등 포스코가 우수기업 사례로 소개돼 있다. (제공: 포스코) ⓒ천지일보DB

◆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됐지만... “전면적인 실태조사 필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는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직장 내 질서가 문란해지고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앞서 포스코는 이 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9년 5월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소책자에 우수기업 사례로 소개됐다고 밝혔다. 해당 책자에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규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 발생 시 대응 절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포스코는 “정부의 법 개정과 시행에 앞서 2018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그룹 차원의 예방 지침과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임직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한 처벌 등 직장 내 괴롭힘 이슈에 대해 국내 어느 기업보다 선도적으로 대응해온 점을 인정받아 유일한 우수 기업 사례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직장 내 괴롭힘 근절 등에 앞장서는 윤리경영을 통해 인간존중의 기업과 윤리적 사회를 위한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포스코 내 성폭력 사건은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초 광양제철소에서 포스코 직원이 협력사 여직원을 성희롱한 사건이 있었고 중순에는 포항제철소에서 50대 남성이 20대 중반 신입직원의 신체 중요 부위를 만지며 성추행한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 노조가 지난해 회사로부터 제대로 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성문제와 관련해 사측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직장 괴롭힘·성희롱 신고. (출처: 포스코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 2022.6.23
직장 괴롭힘·성희롱 신고. (출처: 포스코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 2022.6.23

이번에 또 한 번 사건이 터지며 포스코의 주먹구구식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른 형국이다. 이에 명확한 실태조사와 포스코의 조직문화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포스코는 철강회사고 군사정권 시절에 군인들이 만든 회사로 대체로 위험한 일을 하게 되니, 위계적이고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오래됐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미투운동’ 등이 있으면서 조직문화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포스코의 조직문화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소망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포스코의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 활동가는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분위기가 강할수록 성폭력이 일어나기 쉽다”며 “왜냐하면 성폭력 특성상 방점이 폭력에 있기 때문에 권력을 더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아래로 내려가는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박 운영위원은 전면적인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이와 관련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먼저는 피해자의 신원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며 “익명을 통해 회사, 부서 등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세부항목을 선정해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건에 대해 은폐하고 비호했던 직원들에 대해 일벌백계 원칙을 적용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활동가는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기업 내 인식 전환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활동가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등이 시행되고 있지만 위계적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이 개선되지 못한 것 같다”며 “직장 내에서 주도적으로 성폭력 관련 교육을 200~300명씩 대규모로 하기보다는 소규모로 시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기업 내 수평적인 문화를 계속 지향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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