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모아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리은행, 클리오 등 횡령 사고가 달에 한 번씩 발생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횡령 및 배임 등 기업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초부터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모아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리은행, 클리오 등 횡령 사고가 달에 한 번씩 발생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횡령 및 배임 등 기업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은행 직원, 이란 제재로 ‘눈먼 돈’ 600억원 6년간 빼돌려

올해 오스템임플란트 등 달에 한 번꼴로 직원 횡령 사고 발생

300억 이상 횡령하면 집행유예… 처벌 미비에 모럴해저드 심각

양형 권고 기준 7~11년… 실제 형량은 5년 못 미치고 가석방

최신원·이중근·이재용 등 기업 최고위직 72.6% 집행유예 판결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최근 우리은행에서 ‘600억대’라는 대규모 직원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오스템임플란트부터 계양전기, 모아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올해 횡령 사고가 달에 한 번씩 발생하면서 파문이 이는 가운데 제1금융권에서도 횡령이 발생하자 횡령 및 배임 등 기업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범죄인 횡령·배임죄가 피고인의 직위가 기업에서 고위직일수록, 횡령 액수가 높아질수록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재조명되면서다.

형법상 횡령 및 배임을 저지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살폈을 때 50억원 이상의 회사 자금을 횡령했음에도 4년 이하의 징역에 그친 바가 많았다. 이에 올해 발생한 횡령 사고에 대한 양형이 얼마나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1금융권서 ‘600억대’ 횡령 사고 발생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우리은행 직원이 지난 2012년부터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총 614억 5214만 6000원(잠정)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에 구속됐다. 해당 직원 A씨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차장급 직원으로 알려졌다.

횡령금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송금이 이뤄지지 못한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관련 계약금 원금과 이자 등으로 밝혀졌다.

2010년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채권단에 계약금 578억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채권단은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최대주주(지분 57.4%)였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주관사이자 주채권은행으로 몰수된 계약보증금을 관리해왔다.

이후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고 2019년 말 최종 승소해 계약금과 이자를 포함한 730억원을 받기로 했다. 이는 대이란 제재로 지난 10년간 ‘눈먼 돈’처럼 관리됐으나, 올해 초 송금 허가가 떨어지면서 횡령 사실이 파악됐다.

이에 우리은행의 내부 통제 미흡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해당 직원이 통장과 도장을 모두 보유, 관리하면서 횡령 사실이 장기간 적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통상적으로 은행 등 금융권에선 상급자가 도장을, 하급자가 통장을 관리하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횡령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에 대해 현장 검사를 나섰다. 사진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의 모습.금융권과 경찰에 따르면 우리은행 직원 A씨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회삿돈 500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횡령된 자금은 우리은행이 대우일렉트로닉스를 매각한 자금 중 일부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날 “우리은행에서 횡령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반은행 검사국이 이날 중 형장 수시검사에 착수해 사고 경위를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편 A씨는 지난 27일 밤 긴급 체포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천지일보 2022.4.2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횡령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에 대해 현장 검사를 나섰다. 사진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의 모습.금융권과 경찰에 따르면 우리은행 직원 A씨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회삿돈 500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횡령된 자금은 우리은행이 대우일렉트로닉스를 매각한 자금 중 일부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날 “우리은행에서 횡령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반은행 검사국이 이날 중 형장 수시검사에 착수해 사고 경위를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편 A씨는 지난 27일 밤 긴급 체포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천지일보 2022.4.28

◆호랑이의 해라기보다 사실상 ‘횡령의 해’?

문제는 이 같은 횡령 사고가 올해 달에 한 번꼴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올해 1월 오스템임플란트에선 자금관리 직원이 2215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최초 공시에는 1880억원으로 밝혀졌으나, 수사 이후 최종 횡령 규모는 2215억원으로 파악돼 ‘역대급 횡령 사건’이라는 악명이 남게 됐다.

회삿돈을 횡령한 직원은 횡령금을 주식 투자와 금괴, 부동산 및 회원권 구매에 횡령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주식 투자로 761억원 상당의 손해를 봤고, 335억원은 회사로 반환했다. 또한 경찰 수사에 의해 681억원 상당의 금괴도 회수하면서 최종적인 편취 이득금은 1000억원 가량이다.

2월에는 계양전기에서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계양전기 재무팀 직원은 재무제표를 조작해 245억원 가량을 빼돌렸다가 외부 회계감사 과정에서 적발됐다. 횡령금은 가상화폐 선물옵션 거래와 해외 인터넷 도박, 생활비 등에 사용됐다.

그 다음달인 3월에는 모아저축은행 PF 대출업무 담당 직원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업 상대 대출금 59억원을 빼돌렸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달에는 화장품 회사 클리오와 아모레퍼시픽에서 각각 19억원대, 30억원의 횡령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이같이 지속되는 횡령 사고로 올해는 경인년(호랑이의 해)로 기록되기보단 ‘횡령의 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 ⓒ천지일보
법원. ⓒ천지일보

◆형법·특경법상으론 5년 이상 징역 구형

횡령사고가 계속되자 일각에선 횡령과 배임 등 기업범죄 양형 기준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배임과 횡령에 관한 솜방망이 처벌로 횡령에 대한 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화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형법상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할 경우, 사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업무상 횡령과 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병과’에 처해질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횡령액 규모가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이 적용된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구형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양형기준은 횡령액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까지는 징역 4~7년에 가중 시 5~8년이다. 300억원 이상일 경우 5~8년, 가중 시 7~11년이다. 권고 형량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내용에 따라 형량은 늘어날 수 있다.

◆직위 높고 돈 많이 빼갈수록 ‘집행유예’

문제는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직위가 기업에서 고위직일수록, 횡령 액수가 높아질수록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대기업 총수의 경우 대규모 횡령을 저질렀어도 제대로 된 형량이 구형되지 않았다.

영남대학교가 발표한 ‘횡령·배임범죄에 관한 양형 기준의 적용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배임·횡령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배주주, 대표이사 등 기업 최고위직의 72.6%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직위가 높을수록 집행유예 비율이 높았다.

횡령액이 높을수록 집행유예를 받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과거 분석도 주목된다. 2011~2013년 조사된 횡령 배임 액수에 따른 집행유예 판결 비율 분석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경제사범 11명의 100%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횡령이나 배임 액수가 높은 대형 범죄일수록, 총수나 경영자 등 직위가 높을수록 더 쉽게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았다.

결국 횡령이나 배임 액수가 높은 대형 범죄일수록, 총수나 경영자 등 직위가 높을수록 더 쉽게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25

실제로 최태원 회장의 사촌 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전 회장은 200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했음에도 올해 1월 1심 재판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는 데 그쳤다. 518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배임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은 이중근 부영 회장의 경우 지난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함께 가석방됐다.

이재용 부회장도 ‘국정농단 뇌물공여·횡령’ 사건 당시 최순실에게 넘긴 말 3필(구입액 34억여원)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코어스포츠 용역 대금 36억여원 등 총 86억여원에 달하는 금액을 횡령한 혐의 등을 인정받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재수감 207일 만에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이러한 가운데 검찰총장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정치권과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개정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금융당국과 여야가 발의한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기업 경영진의 내부통제 기준 준수를 구체화하고, 위반 시 임원 제재를 가능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