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픔과 한 서린 5월의 그날… 유가족들 “피맺힌 한 어떻게 푸나”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5월은 가정의 달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지만 광주광역시에서의 5월은 아픔과 한이 서린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달이다.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는 흰 소복을 입은 유가족들과 검은색 정장을 입은 참배객들로 가득했다. 유가족들은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최한 5.18민중항쟁 제42주년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민주묘지를 찾았다.

이날 추모제는 제1부 추모제와 제2부 추모식으로 나눠 진행됐다. 제1부 추모제는 김영훈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 조규연 5.18구속부상자회 회장 순서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 제례를 올렸다.

1부 추모제가 끝나고 유가족들은 5.18민중항쟁 추모탑을 지나 민주묘역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가족 열사의 묘를 찾아 묘소 앞에서 절을 하고 앉아 묘비를 쓰다듬거나 무덤 앞에 놓인 가족의 얼굴을 연신 어루만졌다. 보고픈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오열하는 유가족들도 보였다.

고(故)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80대)씨는 “아들이 ‘선조들이 남긴 잡초를 뽑으러 나갈 것이오’ 하고 나갔는데 무식하고 못 배운 엄마는 잡초가 무엇인지 몰랐다”며 “이제 막 제대해 복학한 우리 아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며 피맺힌 울음을 토했다.

이정연 열사는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풍암동 야간 상업고등학교에서 공부해 전남대학교에 진학한 자랑스러운 구씨의 큰아들이었다. 이 열사는 제대한 후 전남대학교 2학년으로 복학해 1980년 옛 전남 도청에서 벌어진 항쟁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구씨는 “아들이 죽고 난 뒤로 가슴이 너무 아프고 답답해 지금껏 속옷을 입지 못한다”며 “한을 어디서 풀고 이 피맺힌 한을 어떻게 푸느냐”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비통한 부모의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에서 나오는 갈라진 울음소리를 내며 “정연아 들리냐. 말해도 안 들리나 보다”라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이외에도 아들에게 맥주 한잔 따라주고 왔다는 유가족도 있었고, 남편을 추모하며 “당신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라며 비석을 쓰다듬는 유가족도 볼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순천에서 올라왔다는 유가족도 있었다.

광주에서 그리운 가족을 보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김순심(85세)씨는 “전두환이야 우리한테 잘못했으니 그렇지만 내일 오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니 서로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부 추모식은 개식선언과 국민의례, 추모사, 유가족대표 인사말, 추모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더운 날씨로 일사병이나 열사병 등으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국립5.18묘지에는 119 구급대원이 대기해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문금주 전라남도지사 권한대행 행정부지사, 정동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 임종배 광주지방보훈청장, 박해숙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 등이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장은 “이번주 토요일에는 4만여명이 넘게 오고 일요일에만 2만 8600명 정도가 찾았고 어제는 5400명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오늘은 18일 있을 행사를 위해 리허설과 세팅 등의 일정으로 사실상 참배객을 안 받습니다. 하지만 찾아오신 분들은 참배할 수 있게 했다”며 “내일은 오후부터 참배객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가는 길 방명록에는 ‘오월 영령들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5.18정신을 받들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고 주차장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등의 글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말바우 시장에서 혼자 왔다는 한 60대 남성은 민주의 문을 나서며 경례를 하고 뒤돌아 걸음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