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신화/뉴시스] 지난 2월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들이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영국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지난 주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가정의 생활비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신화/뉴시스] 지난 2월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들이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영국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지난 주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가정의 생활비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에 판매하는 천연가스 대금을 자국 통화 루블로 결제받기로 하면서 서방의 러시아 제재 조치에 반격했다.

푸틴 대통령은 1일부터 유럽 비우호 국가들에게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천연가스 공급을 끊겠다고 경고하면서 ‘에너지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유럽연합(EU)의 제재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날 니콜라이 코브리네츠 러시아 외무부 범유럽협력국장은 러시아 RIA 통신에 “EU는 러시아와의 대립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브뤼쉘(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수도)의 무책임한 제재는 이미 유럽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받거나 기존 계약 중단을 요구하는 방안은 푸틴 대통령이 가진 가장 큰 카드 중 하나다. 유럽 정부들은 푸틴 대통령의 최후통첩을 거부했으며 유럽 대륙의 최대 러시아 가스 수입국인 독일은 이를 두고 ‘협박’이라고 비난했다.

에너지 전쟁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올해에만 유가가 30% 이상 급등했다. 이 전쟁은 또한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저장 시설에 피해를 입히며 세계 식량 공급도 방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5월부터 치솟는 유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대규모 석유 공급을 할 계획인 미국과 함께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석유 방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가스 배급제 위협 닥친 독일·오스트리아·영국

러시아산 가스 수입 대금을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에너지 분석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유럽이 곧 디젤과 천연가스 배급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에너지정보국은 작년 러시아가 하루 47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으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유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수출된 것으로 추산했다.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는 이 지역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했다. 또 작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출의 74%도 유럽 OECD 국가들로 갔다.

이처럼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수입 감축을 포함한 제재를 가했다. 3월 초 EU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연말까지 3분의 2를 줄이겠다고 약속했고 영국은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지역에 위험을 수반했다. CNBC에 따르면 천연가스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작년 유럽에서는 가스 도매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영국 가정에서는 이날부터 에너지 요금이 50% 이상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30일 자국이 천연가스 비상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며 가스 비상공급계획 ‘조기 경보’를 발령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이 조기경보 조치가 가스 배급제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소비자와 기업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스트리아도 비상계획 3단계 가운데 첫 번째 단계 실행에 들어갔다고 이날 발표했다.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루블화 지급 요구를 이번 비상계획의 발동 원인으로 꼽았으며 만약 이 계획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배급과 같은 비상통제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0년 4월 9일 러시아 포르토바야 만에서 진행 중인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 공사현장. (출처: 뉴시스)
2010년 4월 9일 러시아 포르토바야 만에서 진행 중인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 공사현장. (출처: 뉴시스)

케임브리지대의 에너지 정책 포럼 책임자인 치 콩 청에 따르면 서구 국가들이 계속해서 러시아와 대립한다면 극단적인 비상조치를 시행해야 하는 나라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는 CNBC에 “만약 그들이 지불 조건에 합의하지 못하고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이 중단된다면 다른 유럽 국가들도 긴급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며 “가스를 덜 소비하는 따뜻한 시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가오는 겨울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 시설로 유입될 가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의 가스 흐름이 멈추면 영국을 포함한 모든 유럽 정부는 시민들이 겨울에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한 초기 조치를 포함한 비상계획을 시작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에너지 정책 교수이자 UCL 지속가능 자원 연구소 소장인 짐 왓슨도 영국에서 정부가 부과한 자동차 연료 배급제가 “확실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봤다. 그는 CNBC에 “영국은 석유 수입에 더 의존하기 때문에 러시아산 천연가스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러시아산 석유에서 벗어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컨설팅업체 에너지애스펙츠의 암리타 센은 3월 영국 의회 재무위원회 회의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제재가 유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독일에서 이달 말 경유가 배급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영국에서도 그 반향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수요 감축은 불가피해

지난달 초 IEA는 세계 석유 수요를 하루 270만 배럴로 줄일 수 있는 10가지 정책을 제시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국가에서 시행되도록 의도된 이 정책에는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를 시간당 10㎞ 줄이고 대중교통을 저렴하게 만들고 일요일에는 차를 사용하지 않고 대도시에서는 자가용을 번갈아 사용하는 방안들이 포함돼 있다.

로리 스튜어트 전 국제개발부 장관은 지난달 초 트위터에 “(에너지) 수요 감소에 초점을 맞춰 러시아가 석유 수출로 받는 수입을 줄일 수 있다”며 “코로나19 대응과 동등한 정부 및 민간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제안한 정책에는 영국의 속도 제한을 시속 80㎞로 줄이고 모든 대중교통을 무상으로 만들고, 우버와 같은 회사들에게 무료 민간승차 허용 기술을 개방하라고 촉구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청 교수도 에너지 제재를 통해 러시아에 타격을 주는 열쇠는 수요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는 것이라며 수요를 줄이면 결론적으로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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